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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우리에겐 형체는 분명치 않아도,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마음이라 하며, 천변만화를 일으키는 바로 그놈입니다. 그놈 속에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이미 갖추어져 있어서, 비우면 비울수록 그것의 기능이 형상됩니다. 비울 것은 생각들과 그것이 굳어진 믿음이란 놈입니다. 그것들이 쓸어내지면, 그 자리엔 자성(自性)만 남습니다. 그 쓰레기들(생각들과 믿음)은 분명 일시적으로는 유용했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점령군과 같습니다.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음 비우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두들 마음으로 마음을 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검사(檢事)의 범법을 한통속의 檢事들로 밝히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죽음입니다. 세상엔 그 문제를 해결한 두 분이 계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하나 있습니다. 두 분 중 하나는 예수입니다. 그리고 그에 의해 생겨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장 25, 26절) 아주 간단합니다. 믿기만 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26절 끝에 말합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타르타, 즉 부처입니다. 그리고 불교는 그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생겨난 종교입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구구한 이야기는 빼겠습니다. 그의 깨달음의 중심은 “나는 없다” 입니다 그가 이룬 깨달음의 핵심 삼법인..

나에게 없는 것을 하늘에 구하지 말라. 내가 누군지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당신이 필요한 것은 모두 당신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건강을 구하고, 돈을 구할 때, 그것은 당신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늘은 현재이며,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을 실현시킨다. 이미 이루어진 결과만을... 그 속에 당신이 있고, 그것들을 즐기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될 때, 하늘이 움직인다. 애원하지 말라.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라. 이것이 마음을 당신의 수하에 두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당신이 하늘임을 알라. 그저 명령하고 기다리기만 하라. 조련된 마음이라면, 그 명령대로 즉시 시행할 것이다.

소출(所出)이 적다고 섭섭해하지 말라! 딱 씨 뿌려 가꾼 만큼만 거두게 되어있다. 누가 날 섭섭히 대할 때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한다. 만사는 내가 정성 들인 만큼만 돌아오게 마련이니 말이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 하지 말라. 평년작만 되어도 대박이다. 잘못해서 밭을 통째로 갈아엎는 사람도 있다. 조그만 것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늘은 감사하는 사람에 더 많은 것을 선사한다. 늘 스승을 따라 게으름 피우지 말고 꾸준히 닦아야 한다. 세월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실패를 맛보면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자책들을 한다. 하지만 세상일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속에 "너무나 당연해, 당연하고말고"라는 그 생각이 일을 성사시킨다. 땀만 뺀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짬짬이 그 일이 이루어져 즐거워하는 자기를 보라. 물론 시각화(Visualization)를 통해서 무르익도록 하라. 마치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이... 노력이 부족하다 하지 말라.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하라. 솔로몬은 말한다. "빠른 경주자라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슨 일을 하며, 머무르고 있는 곳이 어딘지를 안다면, 내가 어떤 류(類)의 사람인지를 곧 알 수가 있다. 스스로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는지에 대해선 굳이 말을 안 해도 말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정성 쏟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의 미래(未來)다. 생각과 믿음이 사물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가치다.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집에 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자기를 바꾸려면 먼저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당신의 일, 만나는 사람,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장소는 생각이 바뀌면서 자동으로 바뀐다. 하늘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믿음이란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에 대해 실제성을 부여하는 것(바라는 것의 실상)이며, 나타나지 않은 것을 증거(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스스로 선택했든, 타인에 의해 유도되었든 매우 주관적인 것이며, 설명이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강요이다. 그 믿음이 혼자만의 것일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강요되는 절대적 信仰(우러러 받드는 믿음)으로 탈바꿈 되고나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나는 믿음을 신앙으로 바꾸는 자들을 잘 이해한다. 그것이 그들의 재산과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와 眞理를 동의어로 만들고, 신앙을 종교(宗敎)라 주장하지만 결코 믿음이 진리일 수는 없으며 신앙이 종교일 수는 없다. 우리는 무엇이든 믿을 수 있지만 ..
믿음이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믿음에 대해 얼마나 믿고 있는지 궁금하다. 聖書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히브리서 11:1)"라 정의했다. 참으로 난해한 말이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은 과연 이해를 했는지 의심스럽다. 저자 역시 바울, 바나바, 아볼로, 누가 등등 추정만 할 뿐 모호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Hope)이고, 보지 못하는 것(Not seen)이라 했다. 바라는 것이 실상이 있는가? 보지 못하는 것으로 증거를 삼을 수 있는가? 믿음은 실체가 아니라, 미지(未知)의 것에 대한 마음 작용이다. 누가 Substance(물질)를 실상(實像)이라 번역했는지 알 수 없지만...증거(E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