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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경계(境界)를 따라가지 말고, 생각을 하고 있는 그놈을 주시(注視)하라! 눈이 눈을 볼 수 없듯, 생각을 하고있는 그놈은 생각이 아니다. 이 몸과 이 마음도 '나'는 아니고, 십팔계(十八界)도 '나'는 아니다. 그것은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고, 느낌도 없고,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선(善)하지도 악(惡)하지도 않고,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지만, 만상(萬象)을 나타나게 한다.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그것은 빛이요, 소리요, 에너지다.
지혜자의 말을 꾸준히 듣다 보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나를 불편하게 했던 알 수 없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후부터는 마음에 끄달림 없이 살게 됩니다. 그렇게 개운할 수 없고, 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나에게 부담을 주고 나를 괴롭히던 온갖 것들이 없어지고, 그냥 자연스럽게,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게 됩니다. 똑같이 해 뜨고 저녁 오지만, 똑같이 사람들 만나고, 하던 일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구상하며 살지만, 더 이상 헛된 것에는 속지 않고 살게 됩니다. 무너져 내린 것은 허깨비 같은 생각들과 알음알이입니다. 그런 것들은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를 가리켜 바른 견해의 회복,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어야 할..
논리적인 설명도 필요 없고, 감정이입을 한 설득도 필요 없다. 당사자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혹세무민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 설득되어 있다. 대개가 지성이 부족하거나, 허황한 꿈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은 외모나 비논리적 분위기로 신비감을 조장한다. 거의 상식적이 아니고 증명이 불가능한 귀신 이야기나 외계인 이야기를 한다. 말세나 개벽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여러 사기꾼이 너무도 자주 써먹던 올드 버전이다. 깨어있는 사람은 이치를 중시하므로 그런 사이비에는 속지 않는다. 지성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은 '깨어있음' 뿐이다.
깨달은 자는 에너지 소모율이 낮다. 그는 생각이 필요할 때만 그것에 몰두하고, 나머지 쓸데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무위(無爲)는 무리하게 애쓰지 않는 것이지, 자기가 할 일도 미루는 삶이 아니다. 일이 있을 땐 힘을 다하여 하고, 쉴 때는 식(息)을 단전에 내려놓고 충분히 쉰다. 그는 쓸데없는 것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지 않으므로,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일이 없다. 그는 늘 편안하다.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리번거리며 헤매는 공부이고, 다른 하나는 성큼성큼 내어 닫는 공부다. 길만 제대로 찾으면 공부는 6개월이면 끝난다. 이 몸도 6개월이면 거의 바뀌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소주천을 이루기 전까지의 공부는 예외 없이 두리번거리는 공부다. 10년을 닦아도 제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스승인지도 모르고 곁에 화려한 샛길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겐 시간이 더 필요하다. 깨어있기만 하다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찾는 이가 많으니라. (마태 7:13)
자기를 알고 싶다면 매일 한편이라도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글은 타인보다 자기를 먼저 향한다. 글 속에 나의 미래가 있으니 말이다. 글을 쓰는 동안 필자는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자기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혹시 가식적인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 단순히 나를 변호하기 위한 글은 아닌가? 이 글이 타인을 위해서는 어떤 이로움이 있을까? 비록 솔직하지 못한 글이라도 좋다. 글을 쓰는 동안 내면의 감찰(監察)이 있을테니 말이다. 단 세 줄의 글이어도 좋고, 앞뒤가 맞지 않고 갈팡질팡해도 좋다. 그것은 앞으로 더 나은 글이 될 것이라는 증거이니 말이다. 확신한다. 글은 틀림없이 나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글은 나를 밝힌다. 내 속을 속속들이 알아채게 해 나를 깨어있게 한다. 매일 한편이라도..
잠들어 있다, 혹은 정신을 잃어 의식을 상실했다와 대별되는 말이 ‘깨어있다’이다. 정신을 놓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통제능력도 망각한다. 선지식들이 이구동성으로 ‘깨어있으라’라고 하였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평생을 공부하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했을 텐데 말이다. 깨어있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깨어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를 질문해보자. 물음에 모두 ‘그렇다’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깨어있는 사람이다. 첫째,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아주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근심 걱정 불안은 모두 과거의 것이거나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 지구에 ..
‘깨어있음’이란 ‘순수한 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하고 있든, 게임을 하든, 영화를 보든, 꿈을 꾸고 있든... ‘나’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깨어있는 것이다. 순수한 ‘나’는 고요하다. 후회나 불안감이 없으며 늘 편안하다. 길을 걸을 때는 그저 목적지를 향해 걸어야 한다. 생각 속에 빠져 걷는다면 그는 잠들어 있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생각에 빠져 상대의 얘기가 들리지 않으면 그는 잠든 것이다. 욕망이 많은 사람은 생각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려면 생각을 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생각은 에너지 소모율이 너무 높다. 생각은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 그 나머지 시간에는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음’은 순수한 인지(Cognition)이다. 나무..
세상엔 老子를 읽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구름잡는 이야기나 늘어놓고 있는 중국 노인이라 하여 대강 읽고 덮어버린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그 내용에 심취해 있기는 하나 스스로의구체적인 체험이 부족하여 단순히 그 글과 이론에만 매여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극소수의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은 노자는 道에 대한 관념적 풀이, 자연 속의 한가로운 삶,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자세, 세상을 편하게 사는 처세의 글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老子를 올바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老子는 인생을 바로 보게 해주는 깨달음의 글이다. 단순히 깨달음의 경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道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어떻게 깨달음에 이를 것인가의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