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Taiji Yoga/7. 구원: 자력-타력, 종교-신앙 (Salvation) (37)
谷神不死
남인도 바라문가에 한 청년이 있었답니다. 그는 釋迦에 귀의하였는데, 당시 인도의 신앙 형태가 붓다 가르침의 본질에서 왜곡되어 가는 것을 한탄했답니다. 사람들에게 正法(?)을 설하였으나 먹혀들지 않자, 他國에 전하기로 결심하고 중국에 왔답니다. 그러나 당시의 중국불교 역시 깨달음보다는 祈福信仰이 만연했답니다. 王(梁武帝)을 만나 설득하는 것이 좋을듯하여 그를 만났으나, 그 역시 자기 업적 자랑하기에 바빴답니다. 식상하여 "너는 누구인가?"라는 그의 진지한 물음에도 "모른다"라고 답해준 채, 小林寺에 들어가 面壁으로 9년을 지냈습니다. 말년에 간신히 혜가(慧可)라는 제자 하나를 얻어 당시로선 획기적인 선종(禪宗)을 열었다고 전합니다. 그의 이름은 달마(Bodhi Dharma)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마치 스크린처럼 비어있는 마음(眞如)과, 스크린에 비친 영상처럼 시시때때로 변하는 마음 말이다. 스크린(眞如)은 어떤 영상이 비치든 가리지 않고 수용하지만,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풍경이 아름답다고 아름다워지지 않으며 폭탄이 떨어져도 흠집 하나 남지 않는다. 본래의 마음(眞我)은 울고 웃어도 그뿐이고, 죽이고, 살리고,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아무런 변함이 없다. 그 마음(眞如)을 알아챈 사람을 가리켜 세상 위에 있는 사람, 깨우친 사람이라 한다. 좋은 일이 있건, 슬픈 일이 있건,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끄달리지 않고 如如한 이유는 사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道를 닦는 사람에겐 세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첫째는 자신(自信),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요, 둘째는 함께 道의 길을 가는 사람, 즉 도반(道伴)이며, 셋째는 길 안내자, 즉 스승이다. 自信 자신을 믿어라. 나는 이미 깨달아 있다. 세상의 부정적 속삭임에 속지 말라. 공부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聖人의 말이라 할지라도 쓰레기처럼 생각해라. 지금 당장 깨어나라. 견성은 어렵지 않다. 어떻게 자기를 아는 일이 그리도 복잡해야 하고, 장구(長久)한 세월이 필요하단 말인가? 道伴 친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는 길은 천 리도 한순간이다. 道伴은 친구를 넘어서 있다. 그의 눈은 언제나 저 높은 곳, 언덕 저편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 道 닦기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꼭 길잡..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 어떻게 세상에 오게 되었고, 결국은 어디로 가고 마는지 모르는 사람, 사실 확인은 포기한 채 오래 믿어왔고 많은 사람이 따르고 있다해서 무조건 따라 믿으려 애쓰는 사람, 그리고... 목숨이 아까워 순종하는 척 하는 이해에 밝은 사람, 만약 당신이 하느님이라면 그런 사람들로부터 숭배(崇拜)를 받고 싶을까? 하느님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자기가 누군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타인의 말과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체험과 확신을 통해 알고 있으며, 당장 목숨을 내어 놓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런 사람의 존경(尊敬)을 받고 싶지 않을까? 당신이 그렇다면 하느님도 그렇다. 세상에 가장 존귀한 것은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없으면 상대도 없고, 세상도 없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일하는 것도, 돈 버는 것도, 권세나 명예를 구하는 것도, 사랑받고 싶은 것도, 자식을 낳는 것도.... 생각해보라. 인간이 하는 행위 하나하나는 빠짐없이 자기를 위해서일 뿐이다. 이웃(원수)을 사랑하라고? 남에게 자비(보시)를 베풀라고? 법(계율)을 지키라고? 인욕(忍辱) 하라고? 예의를 지키라고? 하느님은 한 분만 섬기라고? 살인, 도적질, 거짓말하지 말라고? 부처, 예수를 믿으라고? 국가에 충성하라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그 모든 것이 빠짐없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그것에 무슨 의미를 붙인다 할지라도 자기기만일 뿐이다. 사회 봉사도 좋고, 노벨 평화상도 좋다. 그것들 모두가 하나같이 자기가 없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깨달은 사람이 정규직이라면 무명(無明)의 사람은 임시직에 비유할 수 있다. 깨달음이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을 이해하는 것이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안 것이다. 임시직의 사람은, 절반의 임금에 승진기회가 없고, 남들이 기피하는 격무에 시달려야 하며,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 반면 정규직은 해고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며, 자신이 선택한 업무를 하고,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자유도 보장된다.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는 삶에 대한 의무만 넘칠 뿐, 자유와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며, 영문도 모르는 채 하루 하루를 고통 속에 보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깨닫는 순간 의무는 사라지고, 권리만 주장하게 될 뿐 아니라, 이치에 밝아지고 늘 안락한 가운데 감사할 일만 쉼없이 일어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만하면 깨달아야..
깨우침을 얻은 사람은 첫째, 쓸데없는 망상으로 자신과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괜한 망상을 짓지 않으며, 남의 망상에도 흔들리지 읺는다. 둘째, 오는 것 막지 않고 가는 것 잡지 않는다. 즐거운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단지 받아들일 뿐, 그것들에 집착치 않는다. 셋째, 세상사 모두는 나를 위해 존재하므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것에 보답하는 일인지 늘 잊지 않는다. 하늘 땅 이치를 모두 꿰었다 할지라도 이 세가지의 향기가 그에게서 풍기지 않는다면 단지 지해(知解)의 종도(宗徒)요, 진정한 깨달음의 제자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