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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아무리 상대에게 유익한 이야기라 할지라도들어주기를 강요하지 말라.오히려 역효과를 볼 뿐이다. 청했을 때만 이야기를 해주고, 그 외엔 가급적 잠잠하라.그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읽은 것이 많으면 당연히 말하고자 하는 충동이 온다.하지만 자제하라.속히 내뱉지 말고, 속으로 삭이라. 수행이란 침묵(沈默)과 깊은 연관이 있다.잡념들이 줄어들 때 비로소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드러나는 것이다. 운동도 한 번에 힘을 다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해야하듯 말도 마찬가지다. 가고 또 가라.그것이 성통공완(成通功完)을 이르는 비결이다.

인간에게 있는 먹고 자는 Needs, 그리고 성욕을 가리켜 일차적 욕구(欲求)라 하고, 그 외의 소유욕 권세욕, 명예욕 같은 것들을 가리켜 이차적 욕구, 즉 욕망(慾望)이라 한다. 모두들 숨기고 싶어 하지만, 사실상 욕구 중의 대표격은 성욕(性欲)이다. 밝히기를 꺼리지만 사실상 원초적으로 먹고 자는 것의 대부분 에너지는 그것과 연관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불도(佛道)와 선도(仙道)의 차이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다. 선도는 자연에 순응한다. 불도는 성욕을 죄악시하여 억제를 미덕으로 삼지만, 선도는 그 반대다. 잘라 말해, 성욕이 없는 자는 선도를 닦기 어렵다. 선도는 성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수행의 원동력(에너지)으로 삼는다. 성욕이 없는 자는 단전(丹田)에..

우리는 무엇에라도 우리의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 돈에, 권력에, 이성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호흡에, 그리고 화두(話頭)에, 만트라(Mantra)에 생각을 고정할 수 있다. 그리하면 비록 일시적이지만, 불안이 사라지고 평온함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에 흐르는 에너지에..., 그리고 조금 어렵지만 단전(丹田)에 마음을 보내어 보라. 그것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허망함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이다.

인간관계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이혼의 이유에 대해 보통은 '성격 차이'라거나, 더 솔직 '성적(性的) 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성격의 상대라도 상대가 나를 존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 헤어지기 어렵다. 나아가 Sexless라 할지라도 말이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과 절교를 생각하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나 자신이다. 남, 특히 자기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존중하기 어렵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만이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왜 깨달아야 하는가? 그것 역시 존중받기 위함이다.

호감이 가는 모습은 우리의 삶에 필수라 할만하다. 아무리 고상한 내면을 가졌더라도 우선 비주얼이 먼저 비치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상(觀相)은 중요하다. 절에 있는 부처의 상(相)을 보면 관상의 기초를 터득할 수 있다. 부처의 모습은 가장 길(吉)하다는 모습을 집대성한 것이니 말이다. 혹시 전체적 분위기, 즉 기색(氣色)을 볼 줄 안다면 전문 관상가이다. 거의 모든 관상가들은 기(氣)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관상에 관심이 있다면 마의상법(麻衣相法) 한 권쯤은 독파하라. 보통 피부가 좋고 보기 좋은 얼굴이 좋은 관상이다. 눈썹은 가지런하고, 눈매는 가늘고 길어야 귀상(貴相)이다. 이마가 뒤로 넘어가면 감점이고 광대뼈가 너무 튀거나 꺼져있으면 못쓴다. 코가 너무 날카롭거나 콧구멍이 보이면 좋지 않고 입술이..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당당하게 말하면, 당당해집니다.말(正語)은 깨달음과도 연결됩니다.우선 세 마디만 바꿔 말해봅시다.1. 좋은 것 같아요. ⇒ 좋습니다.2. .. 같은 경우에는 ⇒ ...의 경우에는3. ㅇㅇ신문의 ㅇㅇ기자라고 합니다. ⇒ ㅇㅇ신문의 ㅇㅇ기자입니다.깨어있어야 합니다.말이 중요합니다.깨어있음은 말에서부터 시작하니 말입니다.

누구에게라도 인생의 의미를 묻지 말라. 인생의 의미는 각자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인생에 의미가 없는 이유는 누구라도 만들어 지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 때문이다. 수많은 가능성 중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수많은 생각 중에서 어떤 생각을 가치 있게 생각하느냐에 인생의 의미는 정해진다. 오락가락하지 말라.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불안과 우울은 선택에 오류가 온 것, 조종간을 놓친 것이다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며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신의 결정에 달려있다. 모두 힘내시기를 바란다.

까뮈를 비롯 수많은 서양 철학자들은 삶이란 것은 원래 의미가 없다고 했다. 오늘날 생각 좀 한다는 사람도 그들의 말을 맥없이 따라 읊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실수이다. 삶에 의미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삶을 의미(意味) 없다고 믿고 있는 한 그리될 것이다. 삶에서 의미를 적는 난은 백지상태로 비어있다. 그것에 어떤 그림을 그려 넣겠느냐는 모두 각자에게 달려 있다. 많은 사람이 그리 믿는다 해서 따라 믿지 말며, 오래 믿어온 것이라 해서, 권위자(?)의 말이라 해서, 비판 없이 받아들이지 말라.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발동시켜라. 냉철히 묻고, 숙고(熟考)해 보라. 조만간 삶의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나에게 삶은 충분한 意味가 있었다. 그것은 나의 50년 공부의 결론이다. 몇 가지 물어보자. 첫째, ..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에 무지(無知)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깊은 잠과 같다고 생각하면 두려울 리가 없다. 또 하나,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나'라는 소중한 것이 잊히기 때문이다. 죽는 사람들의 공통된 기대는 자기가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사라지면서 에너지 공급이 정지하고, 몸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죽음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부활(復活)과 윤회(輪迴)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眞理)가 아니다. 사람이 의식을 잃어도 에너지가 공급되면 그는 산 자이다. 몸은 죽어도 혼(魂)은 죽지 않는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것을 우리는 귀신(鬼神)이라고 부른다. 상당한 혼령(魂靈)들은 아직 우리의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에너지를 잃어..

말을 줄이라. 자신이나 남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대화는 삼가라. 상대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즉시 멈추라. 그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대화는 서로를 키우는 일이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상대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완성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장애가 될 수 있는 일은 즉시 멈춰라. 아무나 대화의 장에 초대하지 말라. 초대장은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만 보내라. 거절당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거절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대를 거절한 사람은 일단 연락처 목록에서 지워라. 인연이 닿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 코드가 맞는 사람만 만나라. 아무에게나 보낼 에너지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한정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