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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면목이란 무엇인가? 본문

달과 손가락

본래면목이란 무엇인가?

thedaywemet 2019. 12. 26. 08:00


초기 불교의 무아론(無我論) 신봉자인 한 유튜버와 총림(叢林) 방장(坊長) J 스님의 문답을 들었다. 서로 언급은 없어도 코드가 맞지 않았는지 이야기는 너무 지루하게 전개되었다. 예상대로 방장 스님은 너무 천진난만했고, 유튜버의 예의 차리겠다는 태도는 너무 어색했다.  
 
후일담에 유튜버가 말하길, 석가모니의 말씀에 '나'라는 것은 오온(五蘊)이며, 색수상행(色受想行)까지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아는 것이 식(識)이냐, 즉 자성(自性)이냐, 아니면 그것 외에 무엇이 있느냐? 는 물음과 부처님은 모두가 연기(緣起)의 한 묶음이라 하셨는데, 혹시 그것이 있다면 연기(緣起)의 밖에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방장스님이 답을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결국, '無我論이냐, 진아론(眞我論)이냐'로 다투어 보자는 것이며, 본인이 신봉하는 소승(小乘)의 무아론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데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것을 가지고, 아흔이 다 된 스님을 너무 피곤하게 해드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당신께선 흔쾌히 응하셨지만 말이다.

누구라도 무아론자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너무 이론적이다. 그 너머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무엇에도 머물러선 안 된다고 말하면서, 힌두에 흡수되어 인도에선 이미 사라진 무아론에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감사하게 받겠다는 그의 말에는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모두 아직 도정(道程)에 있기 때문이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말로 어찌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별외(別外)의 이야기지만, 그것을 힌두에선 브라흐만(Brahman), 불교에선 법신(法身)이라 부른다 한다. 인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神은 브라흐만이 아니고, 시바(Shiva)의 아들인 가네샤(Ganesha)이다. 그에게 빌면 돈도 주고, 깨달음도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의 신에 대해선 거의 무관심하다. 창조만 했을 뿐, 복(福)을 주지는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전(神殿)에 가보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먼지만 가득하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채는 "그것"은  모양은 없으나,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무아(無我)라는 별명을 가지고 찾는 사람은 없어도 어디에나 작용(作用)한다.

글을 읽는 것도, 이 글을 쓰는 것도, 그것이 緣起이든 어떻든, 그것이 없으면 어느 것도 가능치 않은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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