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깨달음과 해오(解悟) 본문
깨달음을 체험하면 에고가 사라지는가?
의외라 생각할지 몰라도 그것은 깨달음의 여정에 있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깨달음이란 단지 자아가 본성을 알아챈 것에 불과하므로 견성을 했다 할지라도 기존의 개체성이나 경향에는 변함이 없다.
견성을 하는 순간 우리는 에고가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깨달음이란 전체성과의 합일이므로 에고가 잠시 뒤로 물러나기 때문이다.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의식의 주도권은 분명 본성으로 넘어가지만, 다시 생각의 세계로 돌아오는 순간 에고가 다시 전면으로 복귀한다.
세계가 하나라는 것이 진실이긴 하지만, 물질적 사실세계에서는 자아(自我)가 주인이며, 그때 너와 나, 주체와 객체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더러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자신의 상태에 의심이 생겨 의기소침해진다.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에고가 머리를 들면서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깨달았다는 자만심에 누구에게 솔직히 말도 못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대개 오랜 애씀 끝에 얻었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우리는 목숨(五蘊)이 붙어 있는 한 에고와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유여열반(有餘涅槃)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숨이 붙어 있는한 에고를 인정하고, 대화하고, 설득하며 살 수 밖에 없다. 종일 선정(禪定) 속에 잠겨 있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서 탁마(琢磨)와 해오(解悟)가 필요하다.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이상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으나 진실과 사실 사이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견성을 이룬 도반들에게 명공(命功) 닦을 것을 충심으로 권한다. 아무리 고급 자동차라 할지라도 전기와 연료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남모르게 마음고생 하는거야 그렇다치고 명색이 성불(成佛) 했다는 사람이 소화불량에 심혈관질환, 여기저기 신경통으로 고생하고 나이들어선 치매가 왔다는 말까지 들어서야 어찌 보시(布施)를 입에 올릴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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