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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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ji Yoga/3. 깨달음 (Enlightenment)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thedaywemet 2018. 4. 5. 16:07

온 것은 가기 마련이다. 오고 감은 둘이 아니며, 온 것과 간 것은 모두가 물거품이요, 꿈이요, 허깨비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왔을 때 조심(調心)해야 한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곧 갈 것이란 것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오지도 가지도 않는 놈으로 계속 지켜봐야 한다. 올 때 오는 것을 아는 놈이 있고, 갈 때 가는 걸 아는 한 놈이 있지 않은가?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 하나 고쳐 먹자 심신에 평화가 왔고, 그 다음부턴 성인(聖人)의 말씀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었다는 Y씨가 있고,


죽자 살자 선정(禪定)에만 들던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의 응어리가 확 풀려나가, 그야말로 해탈(解脫)을 이루었다는 K씨가 있었다.


두 사람 다 얼마 간을 잘난척하며 그렇게 지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시나브로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바보가 되었는지 명확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어두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K씨는 5년전 여름, 다시 수행정진에 몰두하여 옛날만은 못해도 해탈상태를 회복했고 지금은 자기가 없어도 가족이 살만한 재산을 만들어주고 어서 세속(世俗)을 떠나 산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며,


Y씨는 지금 아픈 마음으로 선정과 해탈을 얻는 노하우(know-how)를 찾고 있다.


K씨에게는 아무튼 응원을 보내고, Y씨는 볼 때마다 안쓰럽다. 두 사람 다 '온 것은 필경 가고야 만다'는 단순한 이치에 어두운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나는 동진출가(童眞出家)하여 칠십 평생 '큰 스님' 소리를 들으며 선정만을 고수하다가 말년에 정토종(淨土宗)으로 개종(改宗)하여 극락(極樂)에 가서 다시 닦겠다는 희망을 품고 열반에 든 불교승려를 보았고, 


인도 여행길에는 강가에 가지런히 앉아 삼매(三昧)에만 잠겨있는 아름다운 힌두 스와미(swami) 수행자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왜 그들은 아직도 못 깨닫고 있는걸까? 강을 건넜으면 배는 버리고 가야 하는데 말이다.


왜 한국의 불교수행자들은 그들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 선정도 해탈도 말하지 않는다"는 조계(曺溪)의 육조혜능(六祖慧能) 말을 흘려 버리며 죽을 둥 살 둥 앉아만 있으며, 


왜 인도의 수행자들은 고행(苦行)을 포기한 후 목욕하고 여인이 가져온 우유죽으로 허기를 달래고 조용히 대각(大覺)을 하였다는 그들 역시 최고의 신(神), 비슈누의 화신(化身)이라 인정하는 싯다르타의 중도(中道) 발자취를 따르지 않을까?


오직 '그것' 만이 오지도 가지도 않고 여여(如如)한데 말이다.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기다리지 말라. 

그것은 이미 지금 여기에 와서 보아(見性)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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