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몸 공부와 마음 공부 본문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마음도 불편하기 마련이며, 마음이 불안한 가운데 몸만 편안할 수는 없다.
마음이 파악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며, 몸 전체의 에너지(氣) 운행이 원활해져 생명력이 신장된 것을 득명(得命)이라 한다. 득명이란 진짜 생명을 얻었다는 말이며 그리되면 늘 상쾌한 컨티션이 유지되며 노화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득명이란 말이 낯선 이유는 오랜 세월 마음 중심의 행법이 중요시된 나머지 몸(에너지)수련이 상대적으로 폄하되어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오직 마음뿐이고 육체는 불결한 것이므로 하루 빨리 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까지 있다.
그들은 마음만을 실재(實在)라 믿고(一切唯心造), 몸은 가상(假像)의 것으로 제거 대상이라 생각해 왔다. 필자로선 썩 이해가 안되는 주장이다. 마음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몸도 실재해야 마땅하며, 몸이 허상이라면 마음 역시 허상이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과연 그들이 견성을 하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득명을 얻은 수행자는 만나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몸을 경시함으로 인해 소화기, 순환기, 운동기 등 여기저기의 질환으로 고생하는 수행자들은 많이 보았다. 이해 못할 일이다. 농담 같은 그들의 변명은 ‘아픈 나는 없고 아픔만 있다’는 것인데 오죽하면 그리 말할까 안쓰럽기까지 하다.
선도(仙道)의 가르침은 성명쌍수(性命双修), 즉 마음과 생명력의 동시 닦음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면서 둘이다. 고로 마음을 중히 여기는 만큼 몸도 마땅히 대접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세상은 급속도로 밝아 오고 있다. 아마도 몇 년 후면 수많은 견성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아울러 탐진치(貪瞋癡)에 젖어 기계처럼 사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견성은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생 고생하여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한 선지자들의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며(至道無難)”, “견성은 세수하다 코만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을 흘려듣지 말라.
견성이란 것은 없었던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 아니며 태어난 이후 24시간 늘 내 곁에 있어온 것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은 오히려 득명이다. 현세의 우리는 급속히 생명력을 탈진시키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약해진 생명력을 재충전하고 몸을 재정비 하지 않는 한 비록 견성(見性)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고통을 피할 수 없으며 소승수행자처럼 죽기까지 타인들의 눈을 피해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행은 성명쌍수로 진행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우선 견성부터 하고 나서 득명공부를 진행하는 것을 권한다. 견성은 하루 반나절 한이레만에도 가능하고 제대로만 견성을 이루었다면 지키는 것(補任)도 그리 어렵지 않으나 득명공부는 누구나 예외없이 상당한 기간 인내심을 가지고 몸을 다스리고(調身), 에너지를 보충(調息)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득명을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한쪽 날개로는 새가 하늘을 날 수 없으며, 성능 좋은 자동차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솔직해지자. 견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만으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견성자들은 내심 눈치챌 것이라 믿는다. 득명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부야말로 진정한 공부(正精進)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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