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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유지 염원은 집착일까? 본문

和光同塵

생명 유지 염원은 집착일까?

thedaywemet 2019. 6. 20. 08:00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생명 유지는 자연현상이다. 그것은 식물, 동물, 그 외의 모든 존재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너지가 빛, 열, 소리, 전자기, 운동, 혹은 어떠한 형태로 변해도 에너지 총합은 언제나 일정하다)과 질량 보존의 법칙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생명 유지는 집착(생각)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며, 누구도 손댈 수 없다.

식물과 동물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미물(微物) 속에서도 생명 유지의 염원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보라.

싯다르타는 고통의 완전한 소멸을 꿈꾸던 중 존재가 있는 한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착오에 빠진 것 같다.

그는 초기에, "모든 것은 변한다(無常)", "일체가 고통(苦)이다", "나라는 것은 없다(無我)"를 가르쳤다.

하지만 그 이후 도가(道家)의 영향을 받은 대승(大乘)의 가르침은, "고락(苦樂)은 둘이 아니며, 완전한 소멸(涅槃)에 앞서 변하지 않는 실체, 본래면목(眞我)을 깨우쳐야 한다"는 쪽으로 대발전을 이루었다.

진리(眞理)는 고정될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싯다르타의 가르침일지라도 말이다. 진리는 무엇 하나 빠짐없이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 유지 염원은 집착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 현상이다.

죽음 앞에 누가 초연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의 세뇌(洗腦)에 완전히 찌들어 완전한 소멸을 염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자유를 누릴 당체(當體)가 사라져 없다면 자유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건강하게 서로 사랑하며 영생(永生)을 누리고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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