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견처와 용처 본문

和光同塵

견처와 용처

thedaywemet 2019. 6. 11. 08:00


"견처(見處)가 투철(透徹)하고, 용처(用處)는 분명(分明)해야 한다"

見處는 깨달음의 자리이고, 用處는 깨달음이 사용되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밝은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아직도 탐진치(貪嗔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착각에 빠져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지낸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개벽(開闢)이 오는가 봅니다. 많은 이들이 깨달음에 관심을 가지니 말입니다. 매스컴에 힘입어 이제는 깨달음의 소식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개벽은 밝아진다는 뜻입니다. (열 開, 열릴 闢)

하지만 아쉬운 점은 見處를 얻은 분들은 많은데, 用處가 분명한 분은 너무 貴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깨달음(見性)을 이루었으면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할 터인데, 탁상공론만 이어질 뿐 아직은 그것을 지키기에도 급급한 형편이니 말입니다. 

깨달음 다음에 해야 할 것은 에너지(氣)를 기르는 일입니다. 제아무리 큰 깨달음이라 할지라도 용력(用力)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 터이니 말입니다.

이제는 성명쌍수(性命雙修)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성(性)을 닦았으면, 명(命)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무시한다면 見處만 지키다가 세월 다 보내고 말 것이니 말입니다.

밥상이 들어왔다면 배불리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수저를 들고 물끄러미 밥상만 쳐다보고 있겠습니까?

견처(見處)를 알았으면 용처(用處)가 분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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