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선도] 연신환허(鍊神還虛) 본문

선도와 요가

[선도] 연신환허(鍊神還虛)

알아챔 2017. 3. 20. 12:17

세상의 법은, 갔다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순환 이치로 되어있다. 

본인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갔는데, 결국은 떠난 자리에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연신환허(鍊神還虛)는 선도(仙道)에서 말하는 종착지, 구경(究竟)의 자리다. 연신환허는 신(神)이 다시 허(虛)로 되돌아오는 것이며, 이것으로 존재는 원래의 근본자리로 돌아간다. 수련을 통하여 신의 단계까지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완성은 아니다. 신을 이루었지만 그는 아직도 부족하다. 아직도 무지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신환허가 필요하다. 본래의 자리, 그곳이 태극이며, 아무런 걸림이 없이 편히 쉴 곳이다.


연(鍊)은 연(煉)과 같은 말이다. 연은 불질(火)을 해서 진(眞)을 가려내는(柬) 과정을 말하며, 연신(鍊神)이란 신(神)을 정제하는 것을 말한다.

 

신(神)이란 글자를 풀어보면, 시간(三: 현재 과거 미래)과 공간(匚)을 보는(示) 놈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신통방통한 것이다. 그리고 허(虛)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의 허(虛)는 실(實)과 상대되는 그런 허가 아니다. 너무 실해서 실할 수 없는, 너무 커서 가늠이 안되는 그런 허다. 연신환허는 우리는 우리의 인식 한계를 넘어서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그 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선도(仙道) 수행은 정기신(精氣神)을 단계적으로 닦아간다. 연정화기(鍊精化氣: 정을 닦아 기를 깨우치는 수련), 연기화신(鍊氣化神: 기를 닦아 신을 깨우치는 수련)을 거쳐 최종으로 연신환허(鍊神還虛) 자리에 이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단번에 깨달음을 얻는(頓悟頓修)다는 - 게다가 한번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필요도 없다는 - 불교 입장에서 볼 때 선도는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수행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한다면 선도는 일층부터 짓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경우에 따라 일층, 이층은 대강 얼기설기하고 삼층부터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지은 집은 불안하며, 결국에는 모두 헐고 새로 짓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생긴다.

 

수행자가 세상을 버리고 수십 년을 닦고도 생사(生死)를 여윈 환지본처(還至本處)에 도달치 못하는 것은 정과 기(기초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선도(仙道) 역시 불교처럼 앞의 두 단계를 미루고 연신환허(鍊神還虛) 과정(見性)을 먼저 시작 할 수도 있다. 본성자리(虛)는 언제나 거기 그렇게 있으며 회광반조(回光返照)만 하면 쉽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이 공부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대로 본성(眞空妙有 本來面目)을 보고나면 앞의 두 과정을 진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견성(見性)을 했다 할지라도, 필히 정(精)과 기(氣)공부는 마스터해야 한다. 왜냐하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먹어야 하고 섭생과 운동은 기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임(補任)이라 생각한다면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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