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본문
당신은 무엇에 의지하며 사는가?
사람은 무엇인가에 의지하며 살게 되어 있다. 의지처(依支處)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것이 부실하면 불안해지고, 그것이 무너지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구조되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적 위치(권력)가, 어떤 사람에게는 신념이, 어떤 이에겐 명예가, 어떤 사람에게는 학문적 추구가 의지처이다. 돈이 의지처인 사람은 돈 문제로 친구와 원수되고, 그것 때문에 가정파탄이 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에겐 어미가, 학생에게는 학교가, 직장인에게는 직장이, 인기인에겐 무대가, 예술인에겐 작품 세계가, 환자에게는 의료진과 약이, 신앙인에겐 신앙 대상이 무엇보다 큰 의지처이다. 친구나 배우자, 부모, 자식이 의지처가 되는 사람도 너무 많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내일의 큰 의지처이며, ‘잘 될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간다.
아무튼... 우리는 무언가에 의지하며 산다. 돈이 있든, 권력이 있든, 명예가 있든, 심지어 신앙이 있다는 사람도 무엇 하나 생각할 겨를이 없이 정해진 틀을 따라 바쁘게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런 것들이 과연 의지처가 될 만한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썩은 동아줄에 목숨을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해보자. 열거한 것들 중 무엇이 과연 의지할만한가? 세상을 주욱 훑어보라. 돈? 권력? 명예? 한 번에 훅~ 가는 것 아닌가? 생겨난 것은 반드시 무너지고 사라지게 구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미 죽어 사라져 버린 성자(?)라는 사람, 그리고 이미 썩어 문들어져 냄새나는 교리(敎理)를 내세워 그것에 의지하라 유혹하는 직업을 가진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믿을만한가? 이제 우리가 그들과 그들의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지나온 세월을 보면 된다. 신앙이 의지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가 너무나 잘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 의지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는가? 너무나 실망이 아닌가?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딱 하나 의지할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진아(眞我)라고도 불리는 나 자신(自我)이다.
내 몸, 내 마음이 아니고 나의 몸과 마음을 있게 한 ‘그것’... 성서(聖書)에서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신성(神性) 그것, 정신만 차리면 바로 나타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영각성(靈覺性), 언제나 묵묵히 나와 함께 있었던 그것.
그동안 늘 내 곁에서 있는지도 모르게, 한시도 쉬지 않고 만사(萬事)를 보고 듣고 알아채어 나의 갈 길을 알려주었던 그것, 아프면 낫게 해주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활로를 열어주었던 그것, 바로 그것이 의지처로 정말 마땅하지 않을까? 그것은 생겨난 적도 없으니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나의 충복으로 남을 것이니 말이다.
그것을 의지처로만 삼으면 행복해진다. 나머지 일들은 저절로 모두 풀린다. 그것에 명령만 내리면 알아서 모두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의지처로 삼은 사람을 '깨어있다' 한다. 지금은 깨달음의 시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미 깨달은 자들의 대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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