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본문

일상 속 바라봄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thedaywemet 2017. 1. 23. 01:27



태초부터 아버지 하느님이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능력은 매우 조촐한 것이어서, 그 아들에게 진리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마음이 가난한 자들만이 어렴풋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들 역시 그 가난한 마음 때문에 방해를 받기 일쑤였다.


하느님은 아들에게 가장 온전한 사랑을 베풀었으나, 자식은 그에 교감하지 못하였고, 늘 엉뚱한 사랑을 갈구하였다.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아 본 적이 없다며 아버지를 원망하였다. 아들은 늘 무엇인가가 부족했고, 그것을 하느님의 탓으로 돌렸다. 아들은 아버지가 항상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줄 듯 말 듯 하다고 느꼈다. 


아버지 하느님의 능력은 조촐하여서 그의 힘만으로는 아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할 수 없었다. 아들은 어리석었으나, 놀랍게도 기적은 하느님이 아니라 그토록 무지한 아들의 편이었다. 하느님은 기적에 대한 미련이 없었으나 아들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밤, 아들에게 마침내 기적이 찾아왔다.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삶을 낱낱히 해부하고 곱씹으며 부정하던 중, 원망으로 가득 찬 자신의 몸 안에서 아주 작은 불씨를 보았다. 그것은 매우 희미한 불씨이었지만 좀처럼 꺼지지 않았으며, 고독한 날일수록 더욱 또렷하게 그의 눈동자를 비추었다. 


어느 새부턴가 불씨는 아들에게 있어 왠지 모를 삶의 이유가 되었다. 어느덧 불씨는 그의 마음 속을 비추는 작지만 탐스러운 불꽃이 되었다. 불꽃은 그가 눈길주고 싶지 않았던 어둡고 두려운 마음 속을 눈 앞에 가감없이 드러내 보였기에 때론 고통에 울먹거리도록 만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불꽃은 그가 꺼뜨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꽃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였지만, 확실한 것은 불꽃은 늘 그 자리에 존재했다. 그는 그 불꽃과 자신을 동일시 하였으며, 불꽃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어느 날,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어머니와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각자 마늘 한바구니씩을 손질하던 중, 그는 자신이 두려워했던 어머니의 가슴이 뻥 뚫려 있음을 보고야 말았다. 가시와 화살로 채워져있어야 할 그 가슴팍은 비어있었다. 그리고 바로 고개 숙여 그 자신의 가슴을 확인해 보았을 때 그 역시 뻥 뚫려 있는 것이었다. 늘 목격하던 어둡고 비참한 마음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고, 그 삶의 이유인 불꽃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예상치 못한 광경이 좌절스럽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슨 사랑을 베풀었는지를 아주 살짝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두 번의 기적을 통해 약간의 자유와 약간의 사랑을 얻었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이 겪은 그 기적을 "아버지와의 교감"이라 이름하였다. 그 기적은 자연스럽되 필연적으로 일어났으며, 아버지가 베푼 것이 아니지만 아버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은 기적이라고 느꼈으나, 아버지에게는 그 일들이 기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불씨는 있었고, 처음부터 가슴은 뻥 뚫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아들이 이것저것에 정신이 팔려 발견치 못하였을 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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