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두 개의 시각능력 본문
우리는 두벌의 시각기능(視覺機能)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육안(肉眼)이요, 다른 하나는 심안(心眼), 즉 내부 시각 능력이며, 이것은 내부 오감의 기능을 함께 갖는다.
육안과 심안의 다른 점은 육안은 동일 시공의 것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심안은 시공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넘나든다는 것이다.
육안은 거의 에고의 지배를 받으며, 십중팔구 '탐심(貪心)'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정신력을 원하거나 깨우침을 추구하는 사람은 심안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세계와 친하려면 일단 몰입(沒入)이 필요한데, 그것은 심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몰입과 삼매는 연기(緣起) 관계이며, 따라서 심안과 삼매(三昧)도 서로 동조하는 조화가 있다. 그러므로 삼매에 들으려면 심안이 살아나야 하며, 삼매는 심안에 시너지 효과를 준다.
*연기(緣起): 모든 현상은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설. 나아가 일체 현상의 생기소멸(生起消滅)의 법칙을 연기라고 한다. 그 간단한 형태는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등으로 표현된다.
간과하고 있지만, 위빠사나, 쿤달리니 요가, 참선, 단전호흡, 소주천,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등에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내부 시각(內部視覺)이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활성화할 수 있는데, 그것이 '인지력(認知力)'으로 연결되며, 그것이 발현된 것을 가리켜 개안(開眼)이라 한다.
*조선의 전통적 주문 수련에서는 개안이 기초가 되었고, 그것을 통해 천리안, 염력 등 특이 공능을 끌어냈다.
수행자에게 내부 시각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수련에 힘을 쏟아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수행자가 그것을 통해 원하는 무엇이라도 보는 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미지의 것을 인지할 수도 있게 된다. ‘만트라’나 간화선(看話禪)을 몇십 년을 했어도 아직 제자리에서 맴도는 이유는 내부 시각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선 보는 기능과 정신작용이 콤비네이션(combination)을 이루어야 한다. 아무리 뇌력(腦力)이 수승하다 할지라도, 보는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도 볼 수가 없다. 특히 견성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 내부 시각을 통한 반조(返照)가 핵심인데, 진아(眞我)를 누가 알아채는지 깊이 생각할 일이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이다. 이것이 안장(眼藏)이며, 영지(靈知)며, 면목(面目)이며, 영각성(靈覺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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