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진화론과 창조론 본문
노자는 진화론과 창조론 대신 '도(道)'를 이야기 했다. 물론 '도'는 생명체의 탄생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노자의 입장이 하나의 이론으로 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설명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응용을 불러온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익창출과 직결되므로 인간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꽤나 흥분되는 것은, 머지 않아 모든 발달된 학문은 '미스터리를 설명해 주지 않는 노자의 불친절한 이론'이 옳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밖에는 없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현대의 학문은 응용의 방향으로는 무한 발산하지만, 그 근본 원리를 알아내는 쪽으로는 오직 수렴할 뿐, 그 원리 자체에는 도달할 방도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을 동시에 쓰고 있는데, '수렴'이 그중 하나이다. '0으로 수렴한다'는 정의가 '무한히' 0으로 가까워져도 '결코' 0은 될 수 없는 것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설명인가. 그러나 노자로 잠시 빙의한다면, 그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수렴하는 그것 자체가 0이 되지 않고서야 0이 될수 없다고 말이다.
노자의 가르침은 응용력있고, 쓸모있으며(?) 구체적인 이론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조만간 모든 학문의 밑바탕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것 또한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라는 자신의 메시지가 담긴 것일지도..
요즘 창조론을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물론, 그렇다고 진화론 지지하기가 쉽지는 않다. 누군가가 정글에서 물고기잡다가 우연찮게 전구를 발명한게 아니라, '에디슨'의 의도가 고된 노력 끝에 전구를 만든 것이다. 진화는 창조론의 '신'대신 '우연'과 '적자생존'을 들이대지만, 후자의 것은 그렇다쳐도 우연이라고 한다면 정글에서 물놀이하던 사람이 전구를 발명해야 했을 것이다.
모든 에너지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쓸모있음에서 쓸모없음으로, 탄생에서 소멸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을 고려하면, 생명체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을수는 있어도 아메바가 물고기로, 원숭이에서 인간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열역학 법칙에 의거하면 에너지는 의도하지 않는 한, 즉, 또 다른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는 한, 무질서에서 질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겠고, 비슷한 이유로 하등동물이 더 복잡한 고등동물이 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질서 무질서, 쓸모있고 없고가 이분법적인 사고라고해도, 질서에서 무질서로 흘러가는 것이 물리법칙이라면, 생물학에서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이 나타나는 진화는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 정말 우주를 의도하는 자는 따로 있는 것일까?
설마, 아메바가 서식처의 환경변화와 맞물려 스스로 어류가 되려는 의도를 자처하고, 원숭이 또한 아프리카의 극심한 기후 변화 때문에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걸까? 면역세포, 청각세포, 뇌세포, 미각세포, 생식세포 등등 세포 하나하나가 그 모든 의지를 갖고 있었던 걸까? 자의식이 그걸 깨닫건 깨닫지 못하건 간에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물 무생물을 떠나서 빗물 한방울, 돌멩이 하나까지도 그 모든 것이 의도와 존재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는데...
'일상 속 바라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어있는 자가 되라 (9) | 2017.02.07 |
---|---|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16) | 2017.01.23 |
'하늘'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땅'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5) | 2017.01.16 |
과학: 공상의 친구 (8) | 2017.01.03 |
쓸고, 닦고, 치워라.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4) | 2017.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