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왜 태식인가? 본문
태식(胎息)은 원초적인 "숨"을 말하며, 명(命)공부의 백미(白眉)이다. 그것은 견성(見性) 이후에도 필히 이어져야 할 공부다. 그것이 없으면 성명쌍수(性命双修)가 불가능하며 공부 길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오고나면, 보이고, 들리고, 느끼고, 드러나는 것들(見聞覺知) 모두가 그 자리(本來面目)의 알아챔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아직 아니다. 그것들(견문각지)이 모두 한통속이기는 하지만, 따로 따로 기능하고 있어서 끊김과 이어짐이 늘 교차하고 있다.
항상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오직 숨(息) 뿐이다. 바로 생명(生命)자리이기 때문이다.
胎息이 꼭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태식은 내호흡(內呼吸)이며, 그것을 살려내면 따로 마음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無爲) 그 자리(本來面目)의 알아챔이 있다.
見性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태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알아챔이 없으면 一見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깨달음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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