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공부는 우직함 만으로 하는게 아니다 본문
개안(開眼)이란 혜안(慧眼)을 얻는 것이며, 그것을 이룬 후부턴 그 자리(本性)를 자유롭게 보면서 끄달림 없이 살게 된다.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만권의 책을 읽고 장좌불와(長座不臥) 백년을 한다 할지라도 開眼이 부족하면 회답이 없는 연애편지와 다르지 않다.
"개장수를 하더라도 최소 개 목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견성을 원하는 이에게 개목걸이는 개안이다. 필수적이란 말이다. 개 목걸이가 있어야 개를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타르타는 위대하다. 그 이유는 깨달음이 없으면 오랜 세월 뼈를 깍는 노력도 결국 무소용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했기 때문이다.
깊은 선정과 설산의 고행도 그에게 자유를 주지 못했으며, 산을 내려와 몸을 추수리고 새벽별에 눈이 열리는 순간 대자유를 얻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 같이 슬기로우라"는 말이 있다.
시타르타가 위대한 또 하나는 우직함 만으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슬기로움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의 것들을 일일이 체험한 후 과감히 떨치고 새로움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중도, 연기, 깨달음이다.
그리고...깨달음을 향한 그의 가르침(anapana sati, 그리고 身受心法의 四念處) 모두는 개안을 위한 방편이었음을 오늘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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