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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손가락

나는 존재하는가?

thedaywemet 2018. 5. 6. 17:31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존재하는가'처럼 바보스런 질문은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오한 질문도 없다. 누구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존재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대자유(大自由)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타르타는 무아(無我)를 주장했고, 나라고 하는 어느 것도 나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고통 받을 당체(當體)가 없음을 알리면서, 그것에 대한 깨우침 만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가르쳤다. 무상(無常), 즉 만물은 쉼없이 변한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이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은 가르침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으나, 그 생각이란 것 또한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므로 그가 주장해 온 명증성(明證性)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가? 얼마전 타계한 숭산(崇山)처럼 "오직 모를 뿐"이라 해야 하는가?


나란 존재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신비한 존재다


후기의 데카르트처럼 조물주로 神을 받아 들이고 나면 그 문제는 간단히 끝난다.

 

그러나 조물주의 존재란 것이 믿음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약관화한 것만 받아들인다"는 신조(信條)를 스스로 허문 것은 아닐까? 


이 문제는 선험적(先驗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하나 가설을 벗어난 것은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여기에 자명(自明)한 것이 하나 있다. 견문각지(見聞覺知), 즉 봄, 들림, 감각, 그리고 인식이 나의 존재를 분명히 증명한다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고는 결코 그런 신기한 일들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이지만 분명히 실재한다는 것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결론을 내자. 


그 어떤 문제보다 앞서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탐구하는 것이 현명한 순서일 것이다. 엉킨 매듭은 하나가 풀리면 나머지도 풀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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