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번뇌에 대하여 본문
일률적으로 말하지 말자. 그리하면 오류가 생기기 십상이니... 지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려내려 하는 사람도 있듯이 번뇌(煩惱) 역시 그것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즐기는 사람도 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번뇌가 곧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번뇌가 곧 나이며, 번뇌를 버리고는 누구라도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믿는다.
번뇌가 단지 괴로움 만이 아니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대로 두라. 남으로부터 받은 잣대를 가지고 그들을 재단하려 하지 말라. 그가 맞고 당신이 틀릴지 누가 알 수 있는가?
佛道가 지우는 것이라면 仙道는 살려내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옳다고 말하지 말라.
혹시 세상 모두가 괴로움(一切皆苦) 뿐이라고 믿고 있다면 흔적을 남기지 말고 조용히 여기서 떠나라! 세상도 조용해질 것이다. 그리되면 세상만사가 은혜로움이라는 사람들만 지구에 남을 것이다.
세상엔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들 생각대로 한번 살아보라고 그대로 두라. 괜시리 "세상살이는 남김없는 고통이다"라고 평지풍파를 만들지 말라.
그들에겐 착(着)이 삶의 활력소가 된다. 착이 없이 그들은 없다. 착이 그들을 살아있게 한다. 착이 사라지면 그들은 이미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는 법이다. 알아챔이 있다는 것 역시 그 대상이 되는 번뇌도 당연히 있다는 증명이다.
선도는 살려내는 공부다. 그래서 다른 곳엔 없는 胎息을 말하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부활이요, 생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선도는 삶을 찬양한다. 의수단전(意守丹田)으로 선도는 시작된다. 누가 그것을 착(着)이라고 불러도 아무 상관없다. 그것의 출처가 어디인지 몰라도 된다. 모르는 것은 "오직 모를 뿐"으로 그대로 두면 되기 때문이다.
삶이 지겹다고 생각한다면 해결책은 너무나 간단하다. 당장 그만 살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차선책이 있다. 생각을 내려 놓는 순간 죽음같은 고요함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불도에선 열반이라 부른다. 그것은 특별하지 않다. 그것은 애쓰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괜시리 앞서 가려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자.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올 것이다. 가질 수 있는 능력자는 언제라도 다시 놓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선도는 오직 무위(無爲)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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