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언어유감 본문
내가 너무 민감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의 말투를 들으며 가끔 어리둥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젊은이들이 말 '띵작(명작)'이라든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갑통알(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를 해야 함)' 등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말 꽤나 한다는 사람이 ‘다른 것’을 ‘틀리다’라고 말한다든지, '역전 앞(⇒옆 앞)'에서 시작하여, '식사를 먹는다(⇒음식을 먹는다)', '공부를 배운다(⇒공부한다)', '축구를 찬다(⇒공을 찬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음식점에 갔을 때 요리를 내온 종업원이,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면 은근히 명령을 받는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못하겠는데요”라고 농을 건네 그녀를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말은 할머니가 자기 남편에 대해 “우리 신랑”이라 할 때다. 번득 생각에 이 할머니가 결혼을 새로 하셨나 하다가, “지금 댁에 계신 할아버지를 말하는 거지요?”라 물었더니 그리 유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신랑(新郞)이라는 말은 “새 사내”를 뜻하는 말이다. 게다가 내 신랑도 아니고, '우리' 신랑이다. 신랑을 공유(共有)한단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 자기가 새색시가 되고 싶어서 하는 말이구나!”하고 이제는 그냥 넘어가게 되었다.
특히, 불교(佛敎)를 하는 사람이 '누진통(漏盡通)'이란 말을 그들 나름대로 해석할 때, 나는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그 말은 한자(漢子) 말로서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도가(道家)에서 사용해 오던 말이다. 인도의 원어가 아닌 한자 표기 불교 용어가 거의 그렇다.
인도에서 사용하던 “번뇌가 모두 소진했다”는 말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선도(仙道)에서 사용하던 “기운(氣運) 새어나감(漏)이 다했다(盡)”는 말인 누진(漏盡)을 끌어다가 썼을 것이다. 그리하였다면 마땅히 원래의 의미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며, "새어나감이 다했다"는 것이 무엇일지 관심을 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 말은 仙道에서 강조하는 성(性)과 명(命)을 함께 닦는다는 성명쌍수(性命双修)의 핵(核)이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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