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예술은 사기인가? 본문
최근 가수 조영남으로 빚어진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찍이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라 말했었고, 더 일찍이 미국 철학자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 1926~2018)은 "모던 아트의 상황을 특징짓는 건 산재한 사기(fraudulence)의 가능성"이라고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조영남) 역시 며칠 전 출간한 책에 "무엇보다 현대 미술은 사기꾼 놀음이고, 예술은 사기라는 그(백남준)의 말을 섬뜩하게 가슴에 새기게 됐다"고 써놨단다.
'그림 대작(代作) 사건'을 두고 사기 혐의로 기소됐던 조 씨는 지난 25일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냈으나, 여론 재판에서는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
조수에게 대신 그리게 하는 미술계 관행과 원천 아이디어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도 이유겠지만, 연예인 이름값을 등에 업고 작은 그림 하나조차 혼자 감내하지 않았다는 괘씸죄가 더 큰 듯하다. 문제는 그로 인해 앞으로 미술에 관심 접겠다"는 반응도 있듯 사람들 배신감이 조 씨가 아닌 예술 자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나는 그의 이름을 딴 KBS 쇼에 출연한 적이 있어 그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쇼는 생방(生放)으로 진행되었는데 방송 2시간 전에 도착해서 그와 함께 대본을 맞추었었다. 그런데 슈팅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시작부터 대본을 무시한 채 엉뚱한 말로 서두를 꺼내는 바람에 방송사고를 일으킬 뻔했었다. 나 역시 엉뚱한 인간이지만 약속은 지키는 편이라 '이런 식으로 맘대로 하려면 당신 혼자 방송하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대본은 무시한 채 그에 맞춰 방송을 진행했다.
게다가 방송 종료 1분 전에 기(氣)를 발사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5분 전에 할 말이 바닥나자 시청자를 위해 무협지처럼 氣를 끌어내 카메라에 쏘아보라고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아시는 분은 알 것이다. 방송은 초 단위로 진행된다. 거기서 1분은 긴 시간이다. 갑자기 5분 전 얼토당토않은 기발사(氣發射) 주문을 하자 제작진들도 당황하여 술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어찌하겠는가?
자세를 잡고 기운을 끌어올려 카메라에 대고 쏟아부을 수밖에...
당시 나는 서 있는 사람을 氣로 밀어내는 시범은 몇 번 해 보았지만, 카메라 실험은 처음이었다. 조 씨에게 중국에 그런 기공사가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고, 그것은 그의 번쩍이는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랄까? 그것으로 인해 나는 단번에 스타가 되었으며 그 다음 몇 개월간은 TV로 氣를 받고 허약한 몸에 기운이 생기고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고쳤겠지만 말이다.
그 후에도 두어 번 사석에서 그를 만났는데, 한마디로 그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가수면서 화가이고, 작가이면서 방송인이다. 똑똑하고 잘난 와이프를 버리고 결혼도 몇번씩 하고 남들이 못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다.
원래 사기(?)인 예술을 가지고 사기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이 아닌가하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인생(人生)부터가 사기인 마당에 말이다.
미국 MIT의 평론가 홍가이는 책 '현대 예술은 사기다'에서 서구 현대미술을 "내용 없는 위장과 포장의 사기극"으로 간주하면서도, 자칫 빠지기 쉬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동심(童心)의 예술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의 글을 여러 구절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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