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혹시 그리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본문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어디선가 읽었던 이야기다.
2년 너머를 배우고도 답답하기 짝이 없던 Y가 이제는 내 이야기를 좀 알아듣는 듯하여 너무나 흐뭇하다.
“선생님 못 만났으면 어땠을지 몰라요. 지질 때는 확실하게 지져줘야지, 아니면 다시 유야무야가 되고 맙니다.”라고 했다.
그는 전혀 맹탕으로 나에게 온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만 만나면 ‘깨달음은 무엇이고, 성령은 무엇이다’라고 늘 말해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공부가 들쭉날쭉하고, 혼자 앉았을 땐 자신의 밝음을 의심했다. 공부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쉬운 것이 깨달음’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말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이쪽으로만 오면 왜 그리도 이해력이 떨어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분명 이해가 된다고 했고 이제부터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공부하겠다고 다짐하고는 며칠 안 가서 제풀에 스러져 버리는 것이 이 공부다.
“꼭 깨닫고 말리라”, “그까짓 소주천(小周天)이 무예 그리 어려울쏘냐?”라고 다짐 또 다짐해도 일상사로 돌아가 버리면 바로 세상에 속아 망상(妄想) 짓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이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삼생이 인연이 없는 사람은 맛조차 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실망하지 말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연(因緣)이고, 삼생(三生)이고, 싹 무시하고 덤벼들어 보라.
“이 우주에 사람을 이길 장사가 어디 있으랴”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 보시라.
“공부하다 죽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다”고 말하는 선지식(慧菴禪師)도 있지 않던가?
누가 깨어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랴?
끝나는 자리가 있지, 왜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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