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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스승을 만날 때는 자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그러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그를 만날 때는 내 속에서 나는 소리를 무시해야 합니다. 스승은 무엇이든 주려 합니다.하지만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에겐 그는 무엇도 줄 수 없습니다. 그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속상하게 하면, 조용히 내 속을 들여다보십시오.그의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신(神)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몸은 떠나 있어도, 마음은 그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의 에너지장(場)이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만약에 하느님이 실재(實在)한다면, 그의 뜻을 따라 살면 될 것이다.간단한 일이다.하지만 그가 있는지 또한 그의 뜻은 알 수 없다.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諸法無我)"면, 아무런 일도 할 필요가 없다.무언가를 믿을 필요도, 애써 수행할 필요도 역시 없다. 문제는 '나'라는 것이 있을 때 생긴다. 그때 우리는 복잡해진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관리해야 한다.거기서 수행(修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몸과 마음, 그리고 그 둘을 작동시키는 에너지(氣)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정기신(精氣神)이라고 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일정 시간 살고 마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각자 좋은 대로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나면 그만이기 때..

죽어서 천국에 갈 것 같은 유명인은 누구일까? 교수이자 목사인 K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꽤 재미있다. 조사해 본 결과(인용) 마더 테레사가 79%, 마이클 조던이 65%,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60%란다. 흥미롭게도 87%가 되는 인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왜들 그렇게 뻔뻔할까? 나는 한 번도 내가 천국에 갈 확률이 10%를 넘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누가 천국에 갈 것인가를 따지기 전에 과연 천국이란 데가 있는가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순서다. 천국이란 곳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장소라면, 갈 수 있는 확률이 60%든 87%든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것이 사람들이 의식구조다. 천국이란 것은 하느님이 만들었다고들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하느님이란 ..

어디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 부처님은 어디에나 있으시므로(無所不在), 어디에서 기도하든 그는 듣습니다. 반복해서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는 귀머거리가 아니므로 짜증 날 뿐입니다. 그에게 무엇무엇을 해달라고 졸라서는 안 됩니다. 그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셨습니다. 그에게 악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겐 알아서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할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를 이해하는 행위입니다. 그는 지금 사탄과 대립 중에 있습니다. 알고 계시듯 성직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탄 편에 서 있습니다. 그들이 돈과 권력 명예에 목숨 거는 것은 그런 이유 ..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때, 화막(Screen)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영상을 따라 울고 웃을 뿐입니다.영사기가 멈추면 비로소 스크린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잠시 전에 비가 오고 화산도 폭발했지만, 스크린에는 흠집 하나 없습니다.순수의식을 체험하고 나면, 그것이 빈 스크린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하지만 그것이 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드는 본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빛을 비추면 화면에 온갖 것들이 나타나듯이 말입니다.우리들은 매일 그 소중한 것을 지나치고 삽니다. 의식하는 놈은 의식(意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사가 온통 돈과 편안함에만 있으면, 은연중 자기가 서서히 지워져 가는 우울함이 있습니다. 온갖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는 일상사 가운데서 자기가 자성(自性)에 얼마나 ..

닦아도, 지워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변하지만(諸行無常), 언제나 여여(如如)한 것이 있다. 눈앞에 하느님과 부처가 나타나도, 시간 지나면 사라지지만, 오직 하나 항상(恒常)하는 것이 있다. 모양에 속지 말아야 한다. 보고 있는 그놈을 되비쳐 보라. 번뇌 망상을 없애려 하지 말라. 번뇌 망상이 없으면 그놈도 없다. 번뇌하고, 망상하는 그놈을 보라. 그놈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사람들은 이상도 하다. 스스로를 깨우치는 것에는 무관심하고, 의심없이 사이비 종교에 엎드리기를 좋아한다. 수행(修行)과 신앙(信仰)은 전적으로 다른 법임을 알아야 한다. 수행은 관심사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이며, 신앙은 외부에 있는 알지 못할 그것이다. 사이비종교를 살펴보면, 처음엔 자기를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는 가공(假空)의 존재의 대리자라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은근슬쩍 자기가 그것(하느님, 天尊, 上帝)이라고 주장한다. 굳이 하느님이란 존재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이야기의 말미가 하느님으로 끝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의심해 보아야 한다. 원님 덕에 나팔 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관심사를 외부로 돌리지 말라. 무엇에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이 하느님(..

자성(自性)은 무궁무진한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알아차림"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우리가 모를 뿐, 그것에겐 우리에게 필요한 것, 모두를 이루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깨우쳐야 합니다. 수표를 단지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습(無用)니다. 하지만 수표의 기능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무엇이든 필요한 물건을 구해 옵니다. 깨달음은 대단한 일입니다. 하느님(自性)을 알아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깨달음이 먼저다. 먼저 자기가 누군지부터 깨우쳐야 한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아는 것보다 깨우침이 우선이다. 깨어난 사람은 하느님과 친구가 된다. 그에게는 어느 교파가 바르고, 어느 교파가 사이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교회들이 사탄(일루미나티)의 하부조직이든지 말든지, 그에겐 아무 상관이 없다. 그에게는 인도 명상을 해야 하는지, 간화선을 해야 하는지, 위빠사나가 좋은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깨어나면(頓悟) 모든 것이 해결 나기 때문이다. 마치 배부른 사람에게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가 관심이 없는 것처럼... 깨어난 자는 이미 그 자리에 있으며, 그 자리는 극락이며, 천국이다.

언어(言語)는 사람끼리의 약속입니다. 개를 하느님이라 부르기로 약속하면 그날부터 개는 하느님이 됩니다. 개벽(開闢)이란 Open & Open입니다. 모든 것이 열려, 더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세상 끝", "천지개벽", 혹은 "아마겟돈"이라 하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합니다. 그들끼리 그리 정한 거니 그들끼리 실컷 가지고 놀라고 그대로 두십시오. 그런 일은 새롭지 않습니다. 언제, 어느 시대나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추종자들은 언제나 영육(靈肉)간에 착취당해 왔습니다. 언어에 휘둘리지 말고, 휘둘리는 그 당체(當體)가 누구인지에나 관심 두십시오. 그 자리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