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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이성(理性)과 본능(本能)이 싸우면, 아마도 99% 본능이 승리할 것이다. 그 말은 이성적인 사람이 너무 적다는 말이다. 理性이란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하며, 本能이란 생물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삶에 이성보다는 본능을 우선 사용한다. 이성적(理性的)인 사람을 지성인(知性人)이라고 한다. 지성(知性)이란 ‘자기를 아는 것’이며, 지성인이란 ‘자기를 아는 사람’을 말한다. 교육이 필요한 것은 사회가 이성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는 비리와 폭력이 난무하는 혼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권력자가 이성을 가졌다면 탄핵이란 말조차 없을 것이고, 재물에 이성이 대입된다면 비리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사회는 범죄가 힘을 쓰..
한 재벌 총수는 "임자 해봤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앞에 두고 부하가 부정적 말을 하거나 멈칫거릴 때 말이다. 될지 안 될지는 해보면 안다. 마음이 섰을 때는 미루지 말고 힘차게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맞다. 몇 번 실패가 있더라도 최종적 승리를 얻은 자가 승리자이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맡겨진 일 앞에서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달아날 궁리부터 한다. 내가 왜 물러서려고 하는지 그 원인은 해결하려 않고,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달아날 궁리부터 한다. 그런 믿음은 마음속 패배 의식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으로는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 수밖에 없다. 구정물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
남들과의 사이는 좋으면서도, 자기와의 관계는 안 좋은 사람이 있다. 남들에겐 웃어주면서 가까운 사람에겐 웃어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누구보다 사이좋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다. 그럴 땐 조용히 앉아 자기 관조를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혼자서 해결이 어렵다면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단지 이론에 능한 사람보다는, 실제로 자기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산전수전 겪은 사람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해결과 예방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마음이란, 생각, 감정, 의지, 그리고 알음알이를 맡아 수행하는 우리의 소중한 기관(?)이다. 그것은 가끔 '나'를 대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은 독자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대상(色聲香味觸法)의 도움으로 발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적절히 사용하려면 자기 심리(心理)를 아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야 마음을 적절하게 부릴 수 있다.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 그 둘은 한통속이어서 몸을 빼놓고 마음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몸과 마음 관리에 늘 소홀해서는 안 된다. 경거망동하면 자기와 남에게 큰 피해가 된다. 마음을 수하에 두고 부리는 사람을 우리는 지성인(知性人)이라 부른다. 자주 텅 빈 마음도 되어보자. 그리하면 마음의 지배자가 될 것이니 말이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글과 친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껄끄러운 사람을 멀리하는 것처럼... 세상엔 글쓰기를 하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이 있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자기와 더 가까이 있다. 글을 쓰려면 자기를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글로 생각을 끌어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글 쓰는 능력이 생긴 후 글을 쓰겠다고 말하지 말라. 글을 쓰지 않고 글재주가 저절로 생기는 일은 없다. 글을 쓰다 보면 글이 마술을 부린다. 글을 통해 어렵다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글은 곧 자기 관조(觀照)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알아차림이란 특별하지 않다.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종일이 알아차림의 연속이다. 꿈속에서도 알아차린다. 짧은 글이라도 매일 써보라. 알아차림을 글로 표현해 ..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가진 사람은 메타적인 사고를 한다. 말하는 나를 지켜보는 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는 내가 있다는 말이다. 그에게는 사고를 사고하는 능력이 있다. 그는 자기를 텅 비워 수용의 공간을 만든다. 이른바 이완(Relaxation)을 할 줄 안다. 그는 생각을 지배하며 산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지만, 스스로 생각을 만들어 낸다. 그는 늘 Universal mind와 접촉한다. 창의적 생각은 우리의 마음 밖 공간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수많은 발명품은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만들어졌다. 향후 세상은 상위인지(Metacognition)가 좌우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몸과 마음을 지켜보는 간단한 기술만 터득하면 말이다.
자기가 누군지를 깨닫고 나면, 보통은 환희심에 휩싸인다.그리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전해주려 한다.하지만 그것을 받겠다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기처럼 아주 희귀하다.오히려 과대망상 내지는 현실도피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이 더 많다.그런 점에 싯다르타는 보기 드문 행운아이다.다섯 명의 제자를 얻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수천의 추종자를 지닌 성인위(聖人位)에까지 올랐으니 말이다.깨달음의 시대다.이젠 깨달음이 더 이상 자랑이 못 된다. 누구나 약간의 집중력만 유지하면 어렵지 않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작하는 마당(初場)엔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덤벼들어야 한다.'몰라, 괜찮아" 정도로는 남이 먹다 남긴 것 조금 얻어먹기에도 부족하다.깨달음의 가치를 알고, 당분간은 마..
자의(自意)에 의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수행자(修行者)이다. 최근 은둔형(隱遁形) 외톨이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이 범죄의 주역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책임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타력(他力)에 의해 그리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타의(他意)에 의해 은둔할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히기 전에는 말이다. 잘못된 책임을 타인에게만 미루는 사람은 자기관조(自己觀照)를 못 하는 사람이다. 발전 역시 기대할 수 없다. 외톨이가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물론 수행자에 한하지만 ... 그 기회를 자기가 누군지를 알아채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면 그는 재탄생할 것이다. 성인(聖人) 소리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일정 기간 은둔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기가 누..
연애든 사업에서든, 낙관적인 사람은 선별적 기억 만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언제나 성공의 기억만 남아있다. 누구나 쉽게도 "힘을 내라",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감이란 놈은 단지 마음만 먹는다고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감의 첫째는 기억을 성공으로 채우는 것이다. 반복되는 작은 성공을 통해 성공의 기억을 가슴 속에 심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성공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태도, 그것이 확실한 성공비결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체력이다. 에너지(氣)는 그대로 자신감으로 통한다. 어느 때도 비실비실은 성공의 적이다. 수영도 좋고, 자전거 타기도 좋다. 하지만 에너지를 기르는 데 태극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것 배우기가 복잡하면 기마세(養生樁)를 습관 들여 보자. 하루 10분 수련이..
행간(行間)을 읽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여(眞如) 본래면목이란 생각 이전의 자리입니다.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생각 이전 자리, 생각과 생각 사이에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몸을 이완하고 마음도 내려놓고, 고요히 그 자리를 관조(觀照)해 보세요. 그때 나타나는 자리가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여실(如實)하게 드러나게 될 때, 어떤 이는 환희심(歡喜心)이 일어나고, 어떤 이는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하다'라고 하고, 어떤 이는 궁금하던 이치가 밝히 알아졌다고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혜안(慧眼)이 열렸다, 깨달았다, 견성(見性)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