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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살아있는 사람의 관심사는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이다. 별 관심 없이 사는 사람이 더 많지만 말이다. 그 둘이 모든 불안(不安)의 시작이다. 불안의 중심은 죽음이며, 그것이 고통을 부르는 제1원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이다. 신앙처럼 편한 것은 없다. 그것이 신앙이 세상에 만연하는 이유다. 어렵게 따지지 말고, 그냥 믿어버리면 만사 오케이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盲信)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깨우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수행(修行)이라 한다. 세상에 종교라 불리는 많은 신앙이 있는데, 용도는 단지 불안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것에 안주하면 임시적이지만 평안을 얻는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

누구에게나 불안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있는 한, 심지어 깨달은 사람도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불안은 내 안에 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불안할 때는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찾아보세요. 찾아보아도 불안할 이유가 없다면 경보시스템을 OFF 시키세요. 불안은 길들일 수 있습니다. 우선 불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불안의 정체를 알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불안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불안이 허깨비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순간 불안이 닥쳐오더라도 알아차리는 순간 곧 평온을 되찾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몸에 집착하고 마음에 집착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즉시 불안에서 ..

불안해지는 이유는 언젠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부정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청소(정화) 작업용이다. 그러므로, 섣불리 약(藥)을 먹어 불안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안 상태를 유예할 뿐이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이 있다. 겁내지 말고 그것을 지켜보라! 그리하면 몇 초 내로 그것이 허상(虛想)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힘(에너지)을 기르라. 기운이 생기면 불안은 힘을 쓰지 못한다. 첫째, 몸을 움직여라. 특히 허벅지의 힘을 기르는 운동을 해라. 두 번째는 복식 호흡을 해라. 전문가에게 배우다 보면 단전호흡 차원에 들어설 수도 있다.

깨달은 자는 남들이 자기를 몰라준다고 해서 개이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넘어서서 사물을 바라볼 줄 안다. 이른바 이치에 입각한 객관적 사고이다. 그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으며,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두렵지 않다. 그는 사물을 직시(直視)하며 살기 때문이다. 외롭거나 불안, 우울, 두려움은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자기를 주시(注視)하는 순간, 그런 것들은 즉시 사라지고 만다. 그는 자연 친화적이다. 자기확대를 하여 산이나 물, 나무나 돌과도 친구가 된다. 그는 늘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며, 그것으로 자족(自足)하며 산다. '지도무난(至道無難)'이라 했다. 깨달음은 어렵지 않다. 자기 주시가 바로 되는 순간, 깨달음은 즉시 온다.

자신감을 끌어내려면, '출처'를 알아야 한다. 먼저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인 의식이 없이 자신감(Confidence)은 나오지 않는다. 불안의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자신감을 위해선 먼저 불안부터 잡아야 한다. 불안이 자신감의 적이다.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든 자신감은 있는 법이다. 우선 작은 성취에서부터 시작하자. 성취가 축적되면 그것이 자신감으로 나타난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시내가 되고, 강이 된다. 작은 성취가 반복될 때, 그것이 움직일 수 없는 자신감이 된다. 자신감은 도전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도전이 없이 성공은 없다. 지레 겁먹지 말자.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당당히 도전하자.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자신감은 주인의식으로부터 나오니 말이다.

불안감은 도망가거나 싸워야 할 필요, 또는 변신해야(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몸과 마음이 나에게 주는 암시(sign)이다. 세상을 살자면 기피하거나, 싸우거나, 변신해야 할 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럴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뇌와 감정의 오류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불안감이 일어나면 과연 도망하거나 싸워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마음(상황)을 깊이 관찰하여야 한다. 대부분 '뜬금없다'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잘못된 심적(心的) 습관 때문에 생긴 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땐 조용히 호흡을 지켜보라. 호흡이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지, 빠른지 불규칙한지... 1분 정도만 호흡에 집중(attention)하다 보면 호흡이 안정을 찾으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불안감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마음에 속지 ..

걱정도 팔자(八字)라는 말이 있다. 걱정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그 속에 갇히는 것이다. 역사 이래 걱정을 해서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다. 스스로 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늘 불안할 수밖에 없고, 그런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왜 불안해지는가? 스스로 자기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불안 역시 그 뿌리는 무지(無知)이며 원치 않는 미래를 현재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소 뻔뻔해져도 좋다. 자기 마음의 조건들을 당당하게 재편하라. 자기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기만 해서 쓰겠는가? 현재를 살아라.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 거리낌이 없다. 현재만이 실재(實在)하기 때문이다. 깨어있으라. 그것만이 불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불안의 원인은 뇌의 회로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 유물론은 마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당연히 불안을 뇌(腦)의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뇌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心)이며, 그것이 사고작용을 모두 감찰한다. 지식은 뇌의 소관이지만, 지혜는 마음의 영역이다. 지식은 더하는 것이 만들고, 지혜는 빼어낼수록 증가한다. 외로움, 불안, 우울, 두려움은 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물론 몸과 마음은 하나로 뭉쳐있지만 말이다. 마음이 깨어나게 해야 한다. 문제의 실마리는 마음에 있다. 불안의 원인 역시 마음속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안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마스크 벗은 사람은 열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해제와 동시에 잘됐다 하며 모두가 마스크를 벗을 것이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의외로 나이와 관계 없이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불안 때문일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다가 혹시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마스크 쓰기를 강제하기 전, 몇천 년을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잘도 이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바이러스보다 백신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설도 있다. 유럽에서는 정부와 백신을 만든 제약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이미 진행하고 있는데 말이다. 위정자(爲政者)들은 자기들 멋대로 국정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다양하게 국민들을 속인다. 잘도 속아 넘어가는 것이 국민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인간은 누구나 더 나아지기를 원합니다.하지만 게으른 자는 불안한 변함보다는 일없는 안정을 더 선호합니다. 누구나 마음만 바꾸면 자기를 더 낫게 바꿀 수 있건만,마음은 바꾸려 하지 않고, 바꾸지 않을 핑곗거리만을 생각합니다. 불안해서 진취적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진취적이 못 되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불안해서 자기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자기를 바꾸지 않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변하세요, 고정관념에서 나오세요. 거기에 자유가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