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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해탈(解脫)'이란, 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란 설명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알아차리는 자가 없는 해탈은 무의미하다. '열반(涅槃)'은 해탈과는 다른 말이다. 열반은 죽음, 에너지의 불이 꺼진 상태, 원인이 무효가 된 상태 원래의 상태(無)로 돌아간 상태, 알아차리는 자 역시 사라져 버린 상태이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해탈인가 열반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이다. 선도(仙道)가 바라는 것은 해탈이다. 선도는 모든 일이 중심에 ‘내’가 있다. 선도는 무아(無我)를 말하지 않는다. 선도는 누군가를 신앙(信仰)하지도 않는다.
깨달음은 무위법(無爲法)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깨달음에서 멀어집니다. 소주천(小周天)은 유위(有爲)로 시작해 무위(無爲)로 마무리합니다. 축기(蓄氣)가 필요하고, 집중(集中)이 필요하고, 자기 제어(Self-control)가 꼭 필요합니다. 처음엔 땀 흘려 끌고, 밀어주어야 하지만, 나중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소주천은 유위와 무위의 협업(協業)입니다.
심신을 하나로 품어 다스려 산란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氣에 전념(專念)하여 아기처럼 유연해지게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그것을 관조(觀照)할 수 있겠는가? 심신을 다스려 만사에 걸림 없게 할 수 있겠는가? 천문(天門) 여닫기를 자연에 맡겨 둘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배워 안 후에 그것들을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겠는가? 수고하고도 소유치 않고, 바라지 않고, 자랑치 않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윽한 덕인(德人)이라 할만하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如嬰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生之, 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 * * * * 無爲 무위(無爲)는 그저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것을 말하..
마음이란, 있는 그대로 완벽한 것이어서 따로 손을 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생겨난 적이 없어서, 사라질 수가 없고,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못하고, 때가 묻을 수 없어 당연히 닦아서 깨끗하게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굳이 말하자니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은 닦고 말고 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오직 무위(無爲; 일없음) 밖에는 할 말이 없지만, 중생(衆生)이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니, 부득이 호흡을 보라느니, 정좌, 몰입하라느니, 지관, 참선하라느니 하는 방편을 내놓게 된 것이다. 그러한 수행법들은 하나같이 물질, 즉 몸하고만 연관을 가질 뿐, 마음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상호 관계가 없지 않으므로, 혹시 간접적인 효과라도 있을까 하..
일률적으로 말하지 말자. 그리하면 오류가 생기기 십상이니... 지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려내려 하는 사람도 있듯이 번뇌(煩惱) 역시 그것을 혐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즐기는 사람도 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번뇌가 곧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번뇌가 곧 나이며, 번뇌를 버리고는 누구라도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믿는다. 번뇌가 단지 괴로움 만이 아니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대로 두라. 남으로부터 받은 잣대를 가지고 그들을 재단하려 하지 말라. 그가 맞고 당신이 틀릴지 누가 알 수 있는가? 佛道가 지우는 것이라면 仙道는 살려내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옳다고 말하지 말라. 혹시 세상 모두가 괴로움(一切皆苦) 뿐이라고 믿고 있다면 흔적을 남기지 말고 조용히 여기서 떠나라!..
무위의 삶 '사람이 평생동안 끄달리는 걱정꺼리의 99%는 경망스런 생각(妄想)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근심은 심신만 상하게 할 뿐, 유사 이래 걱정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다. 그러나...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사람들은 평생 걱정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모두가 신의 뜻이야", "될 일은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세상 없어도 안돼" 말로는 그리 하면서도 한시도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어째서 그럴까? 한마디로 無知해서 그렇다. "그것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 하지만 근심이 일어나는 걸 난들 어찌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에 달고 산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나 같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어찌하여 걱정에 묶여 살 수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