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無爲의 삶 본문
무위의 삶
'사람이 평생동안 끄달리는 걱정꺼리의 99%는 경망스런 생각(妄想)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근심은 심신만 상하게 할 뿐, 유사 이래 걱정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은 없다.
그러나...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사람들은 평생 걱정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모두가 신의 뜻이야", "될 일은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세상 없어도 안돼" 말로는 그리 하면서도 한시도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어째서 그럴까? 한마디로 無知해서 그렇다.
"그것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 하지만 근심이 일어나는 걸 난들 어찌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걱정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에 달고 산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나 같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어찌하여 걱정에 묶여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한마디로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없어 그렇다. 진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서 그렇다.
하루는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중에 어느쪽이 더 중한가?"
제자가 답했다.
"그거야 물론 알고 짓는 죄가 중하지요"
스승이 말했다.
"아니다. 모르는 죄가 가장 크다. 여기 불에 벌겋게 달궈진 쇠가 있다 하자. 그것을 알고 잡는 사람과 모르고 붙잡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이 다치겠느냐?"
그렇다. 진실을 안다는 것,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 자기의 정체성을 깨우친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세상에 없다. 그것 만으로 세상의 모든 걱정거리(생계문제, 자식문제, 고부문제, 미래의 불안 등)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 후엔 한가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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