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심신을 하나로 품어 다스려... 본문
심신을 하나로 품어 다스려 산란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氣에 전념(專念)하여 아기처럼 유연해지게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그것을 관조(觀照)할 수 있겠는가?
심신을 다스려 만사에 걸림 없게 할 수 있겠는가?
천문(天門) 여닫기를 자연에 맡겨 둘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배워 안 후에 그것들을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겠는가?
수고하고도 소유치 않고, 바라지 않고, 자랑치 않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윽한 덕인(德人)이라 할만하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如嬰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生之, 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 * * * *
無爲
무위(無爲)는 그저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위(有爲)가 당할 바가 못 된다.
몸이 하자는 대로,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내맡겨 두면서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늘 전체를 염두에 둔 중도(中道)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無爲는 상당한 수행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며,
수행자가 이르러야 할 최종 목표라 하여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피나는 수행이 없이 무위 운운하는 우(愚)를 범하여서는 안 된다.
먼저 심신(心身)을 하나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몸이고, 몸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실재(實在)를 보지 않고는 말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사지(四肢) 움직임 하나만 예를 들어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막상 해보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마음 따로, 몸 따로인 것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 친근해지지 않고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두 번째, 아기처럼 유연하게 만든다고 했는데, 전기(專氣), 즉 氣에 전념함으로 그렇게 한다고 했다.
아기처럼 유연하다 함은 무한한 가능성을 말한다.
유연은 순수와 통한다. 그것은 고정적 사고(思考)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사를 집착 없이 긍정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그것을 관조(觀照)한다 하였다.
관조한다는 것은 현재(現在)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 걸림이 없이 사물을 볼 수가 있다.
과거는 언제나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천문(天門)을 여닫으려면 우선 폐쇄된 천문을 다시 가동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천문은 머리 정수리 중앙에 있으며 그곳은 사람과 우주를 일체화시키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단전(丹田)과 통해 있다. 단전은 천문을 여닫는 문고리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無爲를 말할 자격이 생긴다.
그때에야 비로소 배워서 알게 된 모든 것들을 쓰레기처럼 여길 수 있게 되고,
수고하고도 소유치 않을 수 있으며,
베풀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되고,
업적을 쌓고도 자랑치 않을 수 있는 상선(上善)의 경지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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