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무념무상 (7)
谷神不死
시체도 생명(生命)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썩어서 사라져 버리는 데도 말입니다. 관념(觀念)은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죽음 후에도 영혼(Atman)은 살아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죽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존재는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는 한 유지되는데 말입니다. Battery가 방전되는 순간 자동차가 아니듯이, 에너지가 끊기는 순간 우리는 살아있지 못합니다. 죽음이 경험되지 못하는 것은 의식(意識)마저 끊기기 때문입니다.해석은 자유입니다만, 그 상태를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공(空)이란 에너지(氣)이란 에너지가 텅 비어(空) 있음을 말합니다. 견성(見性)이란 의식과 그 의식의 바탕(氣)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합니..
불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 공부를 좀 했다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부정한다. '자아(自我)'를 죽여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비판(批判) 없이 그것을 따르는 많은 사람이 있다. 나는 자기를 '없다'고 하고 부정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석가의 삼법인(三法印) 중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리(敎理)에 근거한다. 과연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는 연기(緣起)하는 것이 맞고, 다분히 의타기성(依他起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론상(理論上)으로는 반박할 여지가 없는듯해 보인다. 그렇다면 '에고(자아)'를 죽여야 하고, 무아(無我) 교리를 따라,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무념무상(無常)을 체험..
요즘 자전거에는 거의 구동계(驅動械)란 것이 달려 있다. 큰 힘쓰지 않고 자전거를 편히 타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것은 무게와 스프라켓(sprocket)의 수(數)에 따라 싼 것(5만 원)에서 시작해 자동장치가 달린 것은 몇백만 원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하지만 값싼 구동계를 달아도 누구나 충분히 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구동계가 아니라 엔진(심폐와 다리)의 힘이다. 물론 고가(高價)의 구동계를 장착하면 다소는 편리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수행 특히 깨달음을 말할 때 강조되는 것이 '고요함'이다. 그것을 가리켜 불가(佛家)에선 '선정(禪定)'이라 하고, 선가(仙家)에서는 고요함에 듦, '입정(入靜)'이라고 한다. 仙家는 그것을 복잡하지 않게 단순히 하나, ..
죽어서 지옥(地獄)에 가지 않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이 있다. 재산을 교회에 바치면 지옥 갈 것도 천당에 간다고 가르치는 악덕 목사도 있다. 천당과 지옥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지만, 죽은 후가 늘 걱정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 걱정 마시라! 혹시 죽은 후 천국 출입이 허가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이 없겠고, 운수가 나빠서 지옥에 간다고 할지라도 전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화탕지옥(火湯地獄)에 간다 할지라도 지낼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은 죽어서 간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사람이 죽으면 신경(神經)이 없어지기 때문에 뜨거워도 뜨거운 줄 모르고, 차가워도 차가운 줄 모르고, 언제나 무념무상(無念無想)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며,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먼저 깨달은 자(善知識)들은 왜 그것을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고 했겠는가?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금강경(金剛經)은 말한다.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라고 말이다. 그 말은 '만약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님을 보면 즉시 깨닫는다'는 뜻이다. 혹자(或者)는 여기에서 '상(相)'은 오온(五蘊 : 色受想行識)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은 쉬운 깨달음을 어렵게 만드니 피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 깨달음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말은 영어로 그냥 "Don’t Think, Just Look"라고 나는 해석한다. 한자어는 ..
왜 진공(眞空)이라 했을까? 진짜 空은 일반적 "텅 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묘유(妙有)라 했을까? 일반적 존재론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眞空妙有는 나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단어입니다. 그것은 필설(筆舌)로는 표현하기 어렵고, 오직 깨달음의 분상에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하루빨리 견성해야 합니다. 진공묘유는 출세간(出世間)의 체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전생(前生)이고, 업장(業障)이고, 원죄고, 천당이고, 삼매(三昧)고, 구원이고, 해탈(解脫)이고, 다 문자 속, 생각 속 이야기 아니던가? 그 자리(本來面目)에 한번 푹 잠기고 나면 모두 끝나고 마는 것을...! 무념무상(無念無常)이고, 일상삼매(一相三昧)고, 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순진한 사람들 헷갈리라고 만들어놓은 이야기 같고...! 세상사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고 영원한 것은 자성(自性)과 에너지(氣)뿐임을 알면, 공부는 끝난 것 아닌가? 공부하기는 다소 무식한 사람이 수월합니다. 그런 사람은 따지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용맹정진(勇猛精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