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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깨달음이란 즉시 알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다. 깨달음은 단지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입니다. 교리(敎理)가 아니며, 배우거나 믿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깨달음은 멀어집니다. 학문으로 덮으려 하기 때문에 내가 점점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다리를 틀고 앉을 필요도 없고, 가족을 버리고 산속으로 숨을 필요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이 바로 '나'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무아(無我)도 아니고, 참나(眞我)도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아(無我)니, 진아(眞我)니, 따지는 것부터 깨닫기 싫은 핑계입니다. 깨달음을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자기를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으며, 만났다..

잠을 자고 있으면, 누가 밖에서 들어오거나 누가 밖으로 나가도 모른다. 선물을 가져와도, 도둑이 들어와도, 모를 뿐이다.깨어있음이란 자각(自覺), 즉 "자기 本性을 알아채고 있음"이다."깨어있음"이라는 말만 제대로 이해하면 공부는 거의 된 것이나 다름없다.육창원(六窓猿)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창문 여섯 개는 안의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의 감각기관이며, 원숭이는 정보를 총괄하는 성품(性品)이다.깨어남은 애씀이나 고행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얼마나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서 성패가 갈린다.상근기(上根器)는 단지 스승의 말 한마디 "直指人心"만으로 담박 깨어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인연 따라 호흡법, 지관법(止觀法), 간화선(看話禪), 주력(呪力), 기도, 단전(丹田)호흡 등 수행(修行..

仙道와 佛道는 공부하는 법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은 비슷한 가르침이 많지만 말입니다. 이 몸이 氣라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선도 공부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 몸이 있고 氣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아는 놈이 있어야 공부가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가랑비 공부법입니다. 불도는 하나를 강조합니다. 하나가 되고 나면 아무 할 말이 없어집니다. 말할 놈도 이미 사라져 버렸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소나기 공부법입니다. 선도는 단계적으로 공부를 지어가고, 불도는 눈 깜짝할 새 단번에 공부를 마치는 겁니다. 선도 공부법은 점법(漸法)입니다. 그러므로 성질 급한 사람은 선도를 닦을 수 없습니다. 이 몸을 닦아 이 몸이 氣라는 것을 우선 알아차리고(鍊精化氣), 두 번째, 氣를 닦아 그것이 神이었다는 것..

부처 가르침의 핵심이 '자기를 깨우치라는 것(性)'이라 한다면, 선도의 가르침은 '생명 깨우치는 것(命)'을 우선한다. 선도는 '생명'을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 깨우침을 '돈오(頓悟)'라 하여 순간적 일이라 한다면, 선도의 생명 깨우침은 '점수(漸修)', 즉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생명의 구성 요소들을 하나하나 훑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선도는 그 요소를 정기신(精氣神)으로 규정하고 단계적 과정을 통해 그것을 깨우쳐가는데, 그것이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와 선도의 최종적 자리(空과 虛)가 거의 일치하는 데서 선불합종이란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평생을 닦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착하고 고지식하여 늘 가던 길, 그 길 밖에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깨달음을 위해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 간편한 방법이며, 그것은 돈오(頓悟)로 가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그러나 많은 수행자가 그 길은 너무 낯이 선, 자기로선 버거운 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라. 막히면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길은 그 길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결과적으론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선도(仙道)는 깨달음보다는 에너지 연단(鍊鍛)에 더 우선을 두는데, 그 이유는 그 길이 돌아가는 듯 해도 더 빠르게 도달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자성(自性)은 다르지 않으며, 건강한 몸에서 건강..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으면 두 명의 수행자가 나온다.한 명은 신수(神秀), 다른 한 명은 혜능(慧能)이다. 깨달음에 대한 스승의 물음에 神秀는,身是菩提樹 (신시보리수)心如明鏡臺 (심여명경대)時時勤拂拭 (시시근불식)勿使惹塵埃 (물사야진애)[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 바탕일세. 때때로 털고 부지런히 닦아서 때가 끼지 않게 하세]라 읊었고, 慧能은,菩提本無樹 (보리본무수) 明鏡亦非坮 (명경역비대)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何處惹塵埃 (하처야진애)[보리(菩提)에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끼일 티끌이 있겠는가]라고 벽에 쓴 것으로 유명하다. 육조단경은 神秀의 이 게송(偈頌)을 점수선(漸修禪)이라고 근기(根器)가 낮다고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
돈오(頓悟)란 단박 깨우침이다. 그것은 언제 올지 모른다. 기다린다고 빨리 오지 않는다.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 도적같이 온다. 누구는 샛별을 보고, 누구는 닭 우는 소리에, 누구는 스승의 말 한마디에, 누구는 책을 읽다가, 누구는 절망적 죽음 직전에 홀연히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또 며칠을 걸려 마치 아침 해가 솟듯이 서서히 밝아졌다는 사람도 있다. 頓悟가 오고 나면 마음이 잡히고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의심들이 풀려나간다. 그 후에는 경전이나 선배들의 어록을 읽거나 선지식들을 직접 만나 내 깨달음의 진위(眞僞)를 가늠하여 의심들이 남김없이 사라져야 한다. 그것을 통해 화두(話頭)는 물론이거니와, 깨닫겠다는 마음 역시 완전히 타파되어야 한다. 그것이 해오(解悟)이다. 頓悟와 解悟가 분명하..
삼매(三昧)란 산스크리트어 'samadhi'의 음역이지만, 뜻글자인 한자어는 나름대로 그 의미를 부여했다. 삼매가 깨달음 용어이기는 해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먹고 자는 일상사 모든 일이 삼매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독서를 하고, 연애를 하고, 작업을 하는 모든 일이 삼매가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삼매의 한자적 의미는 "세 가지가 어둡다"이다. 그 세 가지는 '이것-저것-그것', '몸-숨-맘', '과거-현재-미래', '나-너-우리', '세간-출세간-내세' 등등 무엇도 될 수 있다. 핵심적인 것은 '어둡다(昧)'는 말에 있다. 통상 어둡단 말은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어둡다는 것은 '관심 갖지 않는다'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