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깨우침 (11)
谷神不死
세상에 무상(無常)처럼 멋진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를 늘 새로움 속에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헌데, 그 無常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교리(敎理)가 있다. 어리석은 이에게는 그것이 허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無常에 대한 바른 이해의 결여가 만들어 낸다. 변화는 꼭 필요한 일이며, 그것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좋고, 궂은날은 궂은날대로 좋지 않은가? 쨍한 햇볕이 필요하기도 하고, 구름 낀 날이 좋은 경우도 있다. 삶에는 본래 의미(意味)가 없다.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다. 意味는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므로, 일체는 본인 책임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사는 사람, 그에게 평온은 없다. 오매일여(寤寐一如) '나'는..
지혜자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말라! 그것이 세상을 이렇게 어지럽고 폭력적으로 만든 것이다. 내가 누군지, 神이 있는지 없는지, 죽은 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윤회를 하는지 마는지, 우리는 모른다. 오직 알아갈 뿐이다. 모르는 건 그저 모른다고 하라. 모른다고 하여 나의 자존(自尊)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놈은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한다. 모르는 것은 밀어두고, 알고 있는 그것(Fact)에 정성을 들여라. 신기하게도 어려움이 사라지고 편안해질 것이다. 그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우리는 정신력을 사용해 원하는 것들을 끌어올 수 있다. 믿음, 열망, 기대, 그리고 기다림만 준비되었다면 말이다. 우리가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자기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한 존재라는 데 무지하다. 그러므로 돈과 권력 등,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마음은 충족되지 않는다. 진정한 만족은 자기가 누군지 알아차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누군지를 알기 위해서 지금 없는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 몸을 고르고(調身), 호흡을 가다듬으며(調息), 마음을 알아차리기(調心)만 하면 된다.
무언가 보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통하여 마음을 알아채고, 무엇인지 보이지 않을 때도, 그것을 통해 자기를 봅니다.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알음알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통해 마음을 알아채고, 자기를 깨우칩니다. '자기'가 없이는 그것들이 보일 수도, 들릴 수도, 느껴질 수도, 알아챌 수도 없습니다. 하늘은 자비롭습니다. 도처(到處)에 깨달음의 통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견문각지(見聞覺知)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깨우침이 있고 나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신분, 능력, 금력과 권력으로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시적 만족에 그칩니다.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그런 것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우친 사람은 영원한 안정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에겐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며, 아쉬운 것 역시 없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시작은 하나이며, 모든 것은 그 자리로부터 나오고, 결국은 그 자리로 합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누가 지구를 허공에 매달았었던가? 누가 파란 하늘을 만들고, 바람과 구름을 몰아오는가? 누가 시냇물을 흐르게 하고, 꽃들이 피어나게 하는가? 그리고 아이의 맑은 웃음은 어디에서 올까? "이것"이 없다면 그런 궁금함인들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四十不惑 五十知天命 六十耳順 七十從心 ... (사십불혹, 오십지천명, 육십이순, 칠십종심) "40에 흔들리지 않았고, 50에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 60에 에고에 속지 않게 되었고, 70에는 드디어 욕망대로 살아도 순리(順理)에 거스르지 않게 되었다"는 논어(論語)의 글이다. 언뜻 생각에는 '공자(孔子) 같은 사람에게나 가당한 일이지 나하고는 상관없는 말'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마음의 일이고, 그 마음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니던가? 오랜 세월,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 시달리며 성찰 없이 살던 나 자신을, 오늘이라도 본성(本性)으로 돌려주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그 일들이 당장 이루어지는 것임이 틀림없다. 나이가 70이든, 20이든, 아무 상관 없다. 관심사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기..
죽은 철(徹) 스님을 생각나게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옛적부터 깨달음이 무르익었음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인 말이다. "어두웠을 때는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더니, 깨닫고 나서 보니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더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니,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더이다." 깨우침을 얻었으면, 산이고, 물이고, 그것마저 버려라. 마치 강을 건너고 난 사람이 배를 버리고 갈 길을 가듯이..
엄마 젖을 빨면서 "이것이 없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아기는 없습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한 가뭄을 겪지 않으면 말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無爲自然)에 의지하여 일하고, 재산 모으고, 번식하고, 잘난 척하며 살지만, 그 자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깨우침 얻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當然)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늘 그 자리 속에서 숨 쉬며 살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스승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다 하는 겁니다. 그는 늘 그 자리를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구원, 천국, 열반(涅槃) 해탈(解脫)은 모두가 그 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소한 일에는 마음 쓰지 않고 살고 싶습니까? 최소한 내가 누군지는 알고 살고 싶습니까?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까? 이 지긋지긋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살고 싶습니까? ☞ 그 Knowhow는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 오직 자성(自性)을 깨우쳐야만 합니다. * * * * * *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게 살고 싶습니까? *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까? * 에너지를 운용하며 살고 싶습니까? ☞ 그것은 의사가 도와줄 수 없습니다. ☞ 에너지(氣) 공부를 시작하세요. - 세계선도(仙道)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