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和光同塵 (593)
谷神不死
佛家의 공부는 공도리(空道理)를 깨우치는 것이라 한다. 굳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나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皆是虛妄) 같은 경전 말씀을 채용하지 않더라도 착(着)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오온(五蘊)이 空함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仙家의 공부를 佛家 입장에서 본다면 着을 버리지 못하는 공부다. 바탕은 虛(空)함에서 시작하나, 여전히 色의 세계를 즐기며 살고있기 때문이다. 佛法의 見性은 간단히 말해 性品을 보는 것이요, 누구나 알고자 하기만 하면 단박에 깨우치는 공부라면, 비록 깨우침이 있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몸과 마음을 놓지 못하는 공부가 仙法이다. 공도리를 깨우치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도, 수련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여기 이대로 완벽하게 있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仙家의 경우 비록 깨달음..
깨달음을 얻고 나면 삶에 끄달림이 없어진다. 세상사가 그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아진다. 마치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쳐도, 전쟁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고, 떼죽음이 일어나도, 그것이 영화 스크린(screen)에 스크래치(scratch) 하나 만들지 못하고, 나는 그저 안락한 의자에 앉아 팝콘을 먹고 있는 것처럼... 깨달음이란 내가 사라지는 것(我空)이고, 세상도 사라져(法空), 텅 비고 고요함만 남는 것이다. 그 후엔 의욕이 사라지고, 무엇 하나 갖고 싶은 것도, 무엇 하나 되고 싶은 것이 없는 마음상태, 일 없는 편안함...그것이다. '나'라는 것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란다. 붓다는 "나는 苦와 그 至滅에 대해서만 말한다" 하였으며, 평생동안 팔만사천에 이른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과연 얼마나..
견성을 이루면 몸도 좋아진다 질문:"선생님, 저는 깨달음 인가(認可)를 받은지 벌써 3년인데, 아직도 고혈압, 당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결책이 없습니까?" 대답:"이 어리석은 사람아! 깨달음은 기질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는거야. 나를 봐. 치질에 소화불량, 그리고 요통으로 늘 고생하고 있지 않은가? 그 밥에 그 나물 아닌가? 어찌 마음과 몸이 따로따로란 말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번거로운 마음의 고통(煩惱)이 사라지는데, 어찌 몸은 변하지 않을 수 있는가? 깨달음이란 마음과 몸이 둘이 아님을 안 것이다. 그것은 마음과 함께 몸의 구원도 이루어진 것이다. 어떠한 생활 태도, 무엇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해야 나에게 유익한지 그것까지 알아야...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진정한 깨달음이다 마음..
有에만 치우쳐 있는 사람을 속인(俗人)이라 하고, 無를 숭상하는 사람을 가리켜 道人이라 한다. 仙人은 속인도 도인도 아니다. 속인이면서 도인이다. 유와 무를 둘다 안고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無를 바로 깨우치는 공부가 見性이며 有도 동시에 수용하는 공부가 得命이다. 무(空)를 깨우치기는 쉽다.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命)를 닦기는 쉽지 않다. 그것을 위해선 시간과 땀이 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虛妄한 세상을 떠나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기는 쉽다. 진짜 어려운 것은 이 세상과 웃고 웃으며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을 안고 사는 것이다. 仙道는 有와 無를 동시에 포용한다. 비유하자면 어머니와 아내 두 사람을 다투지 않게 하는 것이며, 전쟁과 평화를 공유하는 것이다. 세상에 그것처..
삼매(三昧)란 산스크리트어 'samadhi'의 음역이지만, 뜻글자인 한자어는 나름대로 그 의미를 부여했다. 삼매가 깨달음 용어이기는 해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먹고 자는 일상사 모든 일이 삼매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독서를 하고, 연애를 하고, 작업을 하는 모든 일이 삼매가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삼매의 한자적 의미는 "세 가지가 어둡다"이다. 그 세 가지는 '이것-저것-그것', '몸-숨-맘', '과거-현재-미래', '나-너-우리', '세간-출세간-내세' 등등 무엇도 될 수 있다. 핵심적인 것은 '어둡다(昧)'는 말에 있다. 통상 어둡단 말은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어둡다는 것은 '관심 갖지 않는다'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가..
성명쌍수(性命双修)란 성(性)과 명(命)을 동시에 닦아간다는 선도 용어이다 性이란 깨달음, 즉 本性을 말하며 命은 목숨(몸과 마음), 즉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세계를 말한다. 佛道는 性이 중심이고 그 외의 것은 모두 허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仙道는 다르다. 결코 이 삶을 헛일이라 생긱치 않는다. 희로애락(喜怒哀樂), 먹고 자고 쉬고 놀고 즐기는 생생한 이 삶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선도는 좀 더 현실(?)에 가까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선도는 見性을 따로 강조하지 않고 우선 命 중심으로 공부를 진행한다. 그렇다고 본자리 공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性공부를 중시하지 않는 이유는 애써 찾아나서지 않아도 命공부를 진행하는 가운데 저절로 밝아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命공..
견성보다 득명 仙道는 견성(見性)보다 득명(得命)에 더 정성을 들인다. 견성은 무위법(無爲法)이지만, 득명은 유위행(有爲行)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견성을 위해선 애를 쓸 필요가 없다. '견성은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이 있듯이...사실상 말 몇 마디에도 알아챌 수 있는 것(言下大悟)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 이미 모든 사람이 깨달아있다. 견성을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전신에 흐르는 강한 기운을 감지한다. 그것은 이제부터는 득명공부에 관심을 가지라는 하늘의 계시이다. 견성과 득명은 동반관계이므로, 견성 이후 득명까지 이루어야 제대로 된 완성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견성을 미루고 득명공부를 먼저 하기도 하지만 견성..
영생불사는 생자(生者)의 염원이며, 역사 이래 수없이 언급되어 온 것이다. 서선(西仙)으로 일컬어지는 예수의 말이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 (요한 11:25,26) 내용이 구체적이다. 그러나 의문을 남겼다. 그것은 '나'가 누구이며,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숙제다. 그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아무튼 그는 육체를 확인시켜 줄 정도로 부활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러나 그 '나'는 이 땅에서가 아니라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서 산다고 가르쳐 왔다. 왠지 모자른 변명같고 떨떠름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하지만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그들의 믿음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는 없다. 믿음이 있는 자는 땅에서..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 4:17) ● 悔改란 무엇입니까? ○ 뉘우쳐(悔) 고치(改)는 것을 가르킵니다. ● 뉘우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잘못을 깨우침을 말합니다. ●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 無知가 가장 큰 잘못입니다. ● 무엇에 대한 무지입니까? ○ 善惡을 아는 것이 곧 무지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몰라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 무법천지를 말하는겁니까? ○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모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 眞理와 함께 살으라는 뜻입니다. ● 진리는 무엇입니까? ○ 時間, 空間과 관계없이 어디서나 통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진리와 함께 살 수 있습니까?..
선도(仙道)는 기(氣) 공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外道(佛道, 儒道, 基督)들과 차별된다. 기는 만물을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그것의 적절한 운영으로 만물은 생장하고, 그것이 다하면 아무리 견고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맥없이 스러지고 만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 그리고 기(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셋 중 하나라도 부실하거나 분리되면 우리는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없다. 생명의 핵심은 기이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활력소이며 우리를 살게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고도의 정신세계와 강건한 육체를 가졌다 할지라도 기(에너지)가 떨어지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죽음이란 기의 기능이 정지되어 정신은 허공에 흩어지고, 몸은 분해되어 흙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