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정의란 무엇인가? 본문

일상 속 바라봄

정의란 무엇인가?

알아챔 2017. 9. 8. 13:59

 

동서고금을 통해서 '정의(正義)'처럼 아무의 입을 통해 값싸게 표현된 말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사람들에게는 '정의'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가보다. 미국선 10만부 팔렸다는 미국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는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니 말이다. 

 

그 책을 읽어보면 정의에 대해 변죽만 올릴 뿐, 실제 정의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있다. 작가를 이해한다. 왜냐면 '정의'란 주제는 말로나 글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생각이 끊어져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공의(公義)' 말과 '정의'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공의'란 말은 신(일부 神)에게나 적용하는 말로서 우리가 왈가왈부할 꺼리가 못된다. 그들이 믿는 신이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용인된다. 그가 약탈을 하건, 살인을 하건, 남의 약혼녀를 임신시키든 그의 행위는 모두 뜻깊고 공의롭다.

 

공자(孔子)가 그랬듯, 우리는 고작 의(義)에 대해서나 입을 뗄 수는 있으나, 그것은 하나마나한 구차한 넉두리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무줄 같아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행위를 누가 했느냐에 따라 의도 되고 불의(不義), 나아가 범죄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의'는 통상 공리(公利)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상 우리사회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가 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보았다.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의'로 받아들여 왔으며, 그것을 민주주의로 발전시켰다. 언제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으며, 오히려 핍박을 했다. 그것을 공리라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을지언정 그것에 '정의'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정의'를 말하려면 먼저 깊은 가슴 속부터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성품(性品)을 깊이 파악하지 못하고 정의를 언급하는 것은 추후 죄악이 될 수 있다. 이데아(Idea) 즉 본성을 깨우친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것이 '정의'가 아닐까?

728x90
반응형

'일상 속 바라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은 가정(假定)이다.  (4) 2017.09.19
양심이란 무엇인가?  (4) 2017.09.10
스승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5) 2017.08.29
누가 깨닫는가?  (2) 2017.05.04
불안, 어떻게 할 것인가?  (2) 2017.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