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본문
노자(老子)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로 도덕경을 시작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 말을 “도(道)를 도(道)라 하면 그것은 도(道)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헷갈리고 좀 심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도(道)라는 것이 너무나 범위가 넓어서
한마디로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 말하지 않았을까?
다르게 한번 해석해보자.
“도(道)를 도(道)라고 할(可) 수 있다. 그러나 불변의 도(常道, 상도)는 아니다.”
남들이 주장하는 수많은 도(道)들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고,
일단은 인정을 해준 후, “불변의 도(常道)”를 이야기 하자는 뜻이다.
이것이 좀 더 낫지 않은가?
세상엔 수많은 도(道)가 있다.
열거하자면 길, 방법, 기능, 상식, 덕행, 예절, 깨달음, 신앙 등등...도(道)가 아닌 것이 없다.
그것들이 비록 불변하는 도(常道)는 아닐지라도, 그것들 도두 도(道)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뜻이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필자는 노자가 가리킨 도를 궁극적으로 ‘존재’, 즉 ‘나’를 가리킨 것이라고 본다.
인간의 모든 추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동서고금을 통해 쉼 없이 행하여지는 도에 대한 추구도 결국은 ‘나’를 확인해 보자는 욕망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노자의 ‘道可道’라는 선언은 결국 ‘나’라는 ‘존재’로 직결된다고 본다.
세상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돈, 권력, 명예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역시 결국은
‘나’를 지키고자 함이요, 그런 것들을 통해 ‘나’를 드러내 보이겠다는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의 ‘나’를 ‘나’라고 하자. 그러나 나에게는 변치 않는 영원한 ‘나’가 있다.”
필자는 도가도비상도를 이렇게 이해했다. 그저 개념놀이로 그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을 가슴에 새겨두자. 그리고... 이것을 상도(常道), 즉 본래의 나(本性)를 만나는 실마리로 삼아보자.
가슴 설레는 일이 벌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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