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선도] 의수단전(意守丹田) 본문
자기를 깨우치고 다스리는 다양한 행법들이 있고, 원하기만 한다면 충분한 정보가 한없이 공급되는 편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중 어떤 정보도 버릴 것은 없으며, 각자의 취향과 체질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자기를 깨우치고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단, 편견을 떠나 좋은 정보를 선택하는 능력만 있다면 말이다.
현대과학이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는 몰라도, 우리의 영원한 숙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능력을 갖췄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 것인가?’이다. 그중에서 ‘나는 누구인가?’란 숙제를 먼저 해결한다면 나머지는 저절로 풀린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것을 견성(見性)이라 하는데, 그것에 대하여 어떤 이는 마음만 다스리면 된다고 하고, 어떤 이는 호흡에 있다 하며, 또한 현대의학을 끌어들여 혈액순환과 신경을 강조하는 이도 있지만, 선도(仙道)의 핵심은 단전을 지킨다는 뜻의 의수단전(意守丹田)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단전(丹田)은 통상적으로 상(上), 중(中), 하단전(下丹田), 세 곳을 가리키며, 그 세 곳이 다른 곳에 비하여 특별하게 기능한다. 상단전은 뇌 기능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중단전은 마음 기능, 그리고 하단전은 우리 심신을 유지 및 운영하는 근본 에너지를 관장하고 있다.
선도수련자는 우선 하단전에 치중하여 수련하는데, 그 첫째 이유는 하단전 에너지가 힘을 잃으면 상단전과 중단전이 맡은 역할(役割)을 제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이 나쁘면 순환장애로 인해 영양과 호르몬 문제로 근본적 생명 활동이 제한을 받는다.
두 번째는, 의수단전이 내면의 본성(本性) 자리로 들어가기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도는 오랜 세월 불로장생법으로 알려져 왔으나, 사실상 밝음 추구를 소홀히 하게 되어있지 않다. 선도는 성명쌍수(性命双修), 즉 건강과 견성(見性)을 동시에 추구하는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조용히 단전을 관조하노라면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본래면목(本性)이 드러나게 된다. 온몸에 에너지가 고르게 흐르며, 동시에 평화와 안정 상태가 점점 깊어진다.
여타의 수련과 선도의 차이점이라 한다면, 앞에서 언급했듯 건강을 챙기면서 깨우침 공부를 한다는 점이다. 대개의 공부들은 하나를 위하여 다른 하나를 포기한다. 하지만 선도는 욕심스럽게도 양쪽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신앙인들과는 다르게 이 몸과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의수단전은 바로 세상의 즐거움(樂)과 밝음(明)을 동시에 찾아가는 특이한 행법이다. 선도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천국보다도, 무상(無常)보다도, 무아(無我)보다도, 일체개고(一切皆苦)보다도, 현세(現世)의 상락아(常樂我)를 우선 추구한다.
의수단전을 하고 있노라면 뒤에서 그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밝음을 만나게 하는 주역이다. 그것에 의해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과 의수, 그리고 진여(眞如)가 한통속이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의수단전에 몰두하면서 댓바람에 진여를 알지는 못한다. 마치 장난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가 아빠가 가까이 다가서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모르듯이 말이다. 하지만 의수단전이 무르익어가면서 고요함과 함께 흔치 않은 행복감에 들게 된다. 삼매(三昧)와 함께 진여가 찾아온 것이다.
의수단전은 알아챔의 훈련이며, 삼매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진여를 만나는 적극적 시도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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