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본문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모두 적용된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개인 소득 중심경제냐 전체 소득 중심경제냐, 수구(守舊)냐 개방(開放)이냐 등 말이다.
그것은 신앙(信仰)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독(基督)을 말하자면 구교(舊敎)/신교(新敎), 불도(佛道)라면 상좌부(上座部), 대승(大乘), 아니면 선불교(禪佛敎), 이슬람이라면 시아파/수니파로 나누어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사람은 완전한 깨우침을 얻기 전에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도록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열반(涅槃)과 해탈(解脫)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자. 이 사안(事案)은 전에도 다룬 적이 있으나, 엄연히 다른 두 단어의 의미를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涅槃은 우선 '자유(自由)'보다는 '소멸(消滅)'의 의미가 더 크다. 유여열반(有餘涅槃),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나누는 것만 봐도 분명하다. 빨리(Pali)어 닙바나(Nibvana)의 음사(音寫)로 본뜻은 "불어서 끄다"이다. 불이 꺼진 상태, 즉 완전한 消滅(無)이며, 다시 윤회(輪廻)가 없는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人)들의 궁극적 희망이다.
解脫의 힌두식 어원은 '목샤(Moksha)'이며, '소멸'보다는 '해방'의 의미이다. 이에 대응되는 道家식 표현은 '自然無爲'로, '속박에서 벗어난 편안한 경지',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사는 경지', 즉 大自由에 이른 것을 말한다. 죽고, 살고, 윤회(輪廻), 부활하는 것은 다음 문제이다. 이는 힌두, 大乘佛敎, 仙道, 基督의 사상적 바탕이다.
자! 이제 공은 당신에게 넘어갔다.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당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그것을 따라 살고, 그것을 따라 수행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다.
'Taiji Yoga > 13. 신선이냐 열반이냐 (To live or to vanis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고의 삶 (9) | 2019.02.08 |
---|---|
백두산 신선 그리고 태극권 (3) | 2019.01.16 |
열반이란 무엇인가? (1) | 2018.07.02 |
해탈과 열반 (2) | 2018.06.05 |
無爲의 삶 (2) | 2018.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