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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ji Yoga/13. 신선이냐 열반이냐 (To live or to vanish)

해탈과 열반

thedaywemet 2018. 6. 5. 16:00

해탈과 열반은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말이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혼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해탈(解脫)은 어원이 산스크리트어 'moksha'이며, 그것은 '삶에 닥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어떤 일도 고통이 되지 못한다.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신의 장난(릴라; lila), 헛것(幻)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 마쳤기 때문이다.

 

열반(涅槃; nirvana)은 시타르타(佛敎)의 새로운 개념이다. 

 

그것을 단지 번뇌가 모두 사라진 상태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기엔 미흡하다. 그것은 소생이 불가능하게 된 생명의 완전한 소멸이다. 거기에 윤회(輪廻)는 붙을 여지가 없으며, 힌두의 해탈과는 개념부터 다르다.

 

초기불교는 혹 깨달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초장(수다원, 사다함)의 열반은 윤회를 벗지 못하는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 가르친다. 진정한 열반(無餘涅槃)은 아니란 뜻이다.

 

대승(大乘)불교의 보살(菩薩)사상은 소승(小乘)과는 전혀 다르다. 불교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신앙 체계다. 오히려 대승불교의 견성성불(見性成佛)은 힌두의 해탈(moksha)에 더 가깝다. 

 

대승의 보살 사상에 열반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이룬 견성(해탈)을 나머지 중생들에게 전하는 것이 목표다. 모두가 대자유를 얻을 때까지 그들을 위해 윤회하고 또 윤회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열반과 해탈은 얼버무려졌다. 그렇게 된 동기는 힌두 쪽에선 이미 시타르타를 그들의 수많은 神 중에 하나로 받아들였고, 불교는 불교대로 힌두와 섞여 이젠 둘 사이에 구별이 거의 어려울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해탈과 열반 중 어느 쪽이 더 취향에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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