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백두산 신선 그리고 태극권 본문
태극권(太極拳)은 양루찬(楊露禪) 노사가 중국 무술대회를 10회 석권했을 때, 각 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들이 그를 칭송하며 지어 바친 이름이다.
양노사(楊老師)는 원래부터 출중한 덕성(德性)을 지닌 인물로, 청년 시절부터 선도(仙道)에 뜻을 두고 여러 스승을 찾았다.
심법(心法)과 기공(氣功)을 동시에 공부하면서 무술(武術)에도 관심을 두어 권법가들에게도 예의를 갖추며 배웠다.
태극권은 원래 신선(神仙)들의 행공(行功)이었지만, 거기에 무술적(武術的) 요소가 가미된 것은 혼란된 시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요함을 강조하고 불문(佛門)의 사람들도 '움직이는 선(禪)'이라 부르며 애호한다는 점, 그리고 그와 겨루었던 수많은 사람 가운데 상해(傷害)를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 그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투로(鬪路)가 태극권의 성향을 대변한다.
"귀족의 권(拳)"이라는 칭호도 받았는데, 그 이유는 황실(淸나라)에서 楊노사를 초대하여 황족들에게 태극권을 배우게 했기 때문이다.
그의 손자인 양청푸(楊澄甫) 대에 이르러 다시 한번 중국 무술계를 석권하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공산당의 집권으로 인해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국민당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공산당은 태극권을 아예 없애려 시도하였지만, 국민들의 태극권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고, 몇 안 되는 직제자(直弟子)들이 모두 중국을 떠난 후에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이는 법이다. 그 후 태극권은 주인을 잃고 공산당에 의해 적전 양가(嫡傳楊家)가 아닌 다른 성씨(姓氏)의 외가권류(外家拳類)에 태극권의 원조란 옷을 입혀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고구려에 패(敗)하고 그 여파로 나라까지 망하게 했으면서도, 고구려를 중국의 변방 속국이었다고 역사를 날조하는 그들이 아니던가?
태극권을 이해하려면 仙道를 알아야 한다. 태극권은 원래 격투기가 아니다. 백두산 神仙들의 연공법이 무당산(武當山) 도인(道人)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중국의 지식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태극권은 바른 스승 밑에서 10년을 배워야 비로소 인정을 받고, 깊은 내용까지를 숙지하려면 최소 30년은 닦아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필자는 감사하게도 양노사(楊老師)의 직제자(直弟子) 두 분(홍콩, 미국 거주)으로부터 적전 양가(嫡傳楊家) 장권십삼로(長拳十三路)를 가르침 받았는데, 두 분 모두 氣와 丹田, 그리고 小周天를 중시하는 분이셨다.
대륙(中國)을 30여 차례 방문해서 고수(高手)라는 분들을 여럿 만났지만, 아쉽게도 진수(眞髓)인 양가 내가권(楊家內家拳)을 구사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태극권 금메달리스트가 氣를 모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정통 태극권(正統太極拳)이 이미 중국에서는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태극권은 단순한 무술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단전(丹田)이 깨어나야 하고, 축기(蓄氣)에 이어 소주천(小周天)과 태식(胎息)이 이루어져야 적통(嫡統) 태극권이다.
나에게 지금 남은 소망이 있다면 태극권의 원래의 의미를 회복하고 백두산족의 문화에 실려 전 세계에 재보급되는 것이다.
'Taiji Yoga > 13. 신선이냐 열반이냐 (To live or to vanish)'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 신선족 (3) | 2019.02.15 |
---|---|
최고의 삶 (9) | 2019.02.08 |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0) | 2018.11.26 |
열반이란 무엇인가? (1) | 2018.07.02 |
해탈과 열반 (2) | 2018.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