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심심하다는 것 본문
진정 깨닫고 싶다면 심심함을 용납해야 한다. 모든 수행법이란 에고(ego)를 심심하게 만드는 작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심함을 견뎌내는 노력을 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한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마시고, 생각을 쉼 없이 과거와 미래로 옮기며 쓸데없는 근심, 걱정, 망상(妄想)에 빠지고... 술, 담배, 마약이나 섹스나 오락, 그도 아니면 일에 몰두하고... 자식이나 애완동물에 심하다 할 정도로 애착하고, 교회나 사찰 그리고 어디론가 분주히 쏘다니는 이유는 하나같이 모두 심심함 때문이다.
사실상 本來面目은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것은 늘거나 줄지 않으며,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見性한 사람이 그리도 드문 이유는 단조로움을 용납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세상 사람 거의가 비슷하다. 쉼 없이 무언가를 만들었다 부수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조각하고, 작곡하고, TV를 보고, 그 속에 심취하여 감동하고, 눈물 흘리고, 춤도 추어 대는 것... 그 이유는 심심함이다.
모두들 자기를 있는 그대로 가만두려 하지 않는다. 얼굴에 그림도 그리고, 잘라내고, 붙이고, 울퉁불퉁 근육도 만들고,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투다가, 정히 심심하면 목숨을 담보로 전쟁까지 일으킨다.
묵묵히 자신을 내려놓아 심심함에 맡겨 보면 오래지 않아 自性을 보게 되고 결국은 심심함으로부터도 영원히 해방될 텐데 말이다.
각설하고...
그런 와중에도 의식(意識) 넘어 저쪽은 여전히 고요하고 넉넉하다. 잠시라도 건너편 동네 살림살이를 기웃거려 보라.
그리 한다면 굳이 심심함을 참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내치지 않아도 조만간 환지본처(還至本處)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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