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만사는 때가 있다 본문
J라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백지를 나누어주며 장래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적어내라고 했다. 그런데 먼 산만 바라보던 아이는 백지를 냈다. 그 이유를 묻는 선생에게 아이는 "아무것도 안 되면 안 되나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황당해진 선생은 부모를 호출했고, 찾아간 아비에게 "이 아이 정신감정 좀 해봐야겠어요"라고 말했는데, 아비는 그저 덤덤했다.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도 울지 않던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컴퓨터 게임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도 하는구나" 하고는 데리고 나가 맛난 것을 사주며 물었다.
"너 진짜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어?" 아이의 대답은 “지금은 그래요”였다.
군대에 다녀온 아이는 유럽 여행도 마다하고, 대학도 가지 않겠다 하고는 이삿짐센터 냉장고 짊어지는 짐꾼이 되었다. 왜 그리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답은 "다른 것보다 돈을 많이 주니까..."였다.
그 아이는 지금 택배 회사 물품 분리직을 한다. 담배 한 대 피울 여유도 없는 격무라 했다. 최근엔 싫어하던 정규직이 되었다는데 이유는 삼 년 후 보너스 삼천만 원을 받아 엄마 크루즈 여행시켜주기 위해서란다.
"꼼짝 말고 숨만 쳐다보고 앉아있으라"는 아빠의 명령에 한 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길래, "너는 커서 중이 되면 어떨까?" 했더니, "그런 건 돼서 무엇하냐?"고 했었다.
귀차니스트이고 내가 성질 건드릴 때만 눈물 흘리는 놈이지만, 분명히 나보다는 잘난 놈이라 생각한다. 중2 때는 싫은데도 강훈(强訓)을 해서 암벽등반 경기에 나가 서울시 교육감 상도 타고, 쌈박질과 연애만 하고 다녀서 중학 졸업 땐 반에서 꼴찌였는데, 무슨 일인지 고3 졸업 땐 반에서 우등도 했다.
벌써 5년째 전화도 없고, 한 번 찾아온 적도 없지만, 그리 섭섭하지는 않다. 그놈은 지금 공부처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철(性徹)이란 조계종 사람은 공부처에 엄마가 찾아갔다고 돌팔매질까지 했다지 않던가?
내가 낳은 자식도 그러하건만, 남의 아들딸이 나를 따라 공부를 하든 말든, 엉덩이에 뿔이 나서 잘난 척을 하든 말든, 시절 인연 따르라고 그냥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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