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부분과 전체 본문
너무 가까워도 볼 수 없고, 너무 멀어도 볼 수 없다. 너무 쉬운 문제는 쉬워서 틀리고, 너무 어려운 문제는 어려워서 틀린다.
부분만 알고 전체를 모르는 사람을 소인배(小人輩)라고 하지만, 늘 전체만 이야기하고 부분을 소홀히 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모든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과의 이야기는 길지 않다. 5분도 충분하다. 그런 사람을 신앙인(信仰人)이라 부른다. 자기가 무신론자(無神論者)라고 항변을 해도 소용없다. 그는 무신론을 신앙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만 있으면 모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에너지(氣)가 없거나 약하면 에너지 소통에 큰 장애가 생기는데 과연 깨달음인들 유지가 가능할까?
생사(生死)가 일여(一如)라고요?
평생을 간화선(看話禪)에 취해서 심지어 조실(祖室)에까지 오르시고도 말년에 정토종(淨土宗)으로 개종(改宗)을 한 큰 스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말도 안 된다고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 그분 역시 죽기를 맹세하고 도(道)를 닦았던 사람이다.
나 역시 선도(仙道)가 전부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교, 불도(佛道)가 나에게 가르친 것이 선도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 역시 알고 보면 나름대로 훌륭함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거의 퇴색했지만 유교(儒敎)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매우 유용한 가르침이다.
세상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지만, 깨달음이 우선이다. 그런데 너무나 먼 길을 왔다. 노력을 놓지 않고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도인(仙道人)들은 깨달음은 잠시 뒤로 미루고 에너지(氣) 공부에 심취한다. 그러다 보니 "어라! 이건 뭐야?"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것이 있다. 그 이상 마음이 평안해질 수 없는 경계(頓悟)를 체험한다. 처음엔 "이게 뭐야?" 하다가, 차츰차츰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된다.
본연(本然)의 자리와 계합(契合)을 한 것이다. 그 후부턴 공부가 일취월장(日就月將)을 한다. 비로소 성명쌍수(性命双修)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공적(空寂)이니, 진공(眞空)이니, 하늘이니, 우주니, 전체만 가지고 놀려고 하지 말라. 우선 이 몸, 이 마음부터 챙기다 보면 공적한 하늘과 우주와도 소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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