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원초아, ego, 실재 본문
우리는 원초아(原初我)와 에고(ego), 그리고 자성(自性)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 자성만을 실재(實在)라고 가르칩니다. 원초아와 에고는 조건적이기 때문입니다.
원초아는 본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이기적 성향을 띄는 에고, 즉 자아(the Self)라고도 불리는 것이 행위의 주체이고, 대상과 구별되는 의식의 통일체입니다.
원초아는 존재의 근본을 유지하는 소아적(小兒的)인 욕망의 세계이며, 교육의 영향으로 그것을 감독 조절하는 의식이 자아(自我), 즉 에고입니다. 또한 따로 분류하기도 하는 초자아(超自我)라 불리는 에고를 감시하는 의식이 있으나, 나는 그것도 자아의 영역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견성(見性)을 위해서는 에고(the Self)를 바로 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에고를 자기(自己)라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이라서 에고를 파악하지 못하고는 자성을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에고를 죽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잠시 쉬게 하거나 내려놓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죽인다는 것은 숨을 쉬고 있는 한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라고 불리는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것을 실재라고 간주하고 살지만, 엄밀히 그것을 실재라고 하기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건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재를 가리켜 진리(眞理)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장소와 관계없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치 않고,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을 가리켜 실재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공간(空間)의 영향을 받는 데다가 시간(時間)을 이기지도 못합니다. 즉 아까 여기에는 없었으며, 잠시 후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각과 언어(言語)만 내려놓아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전 세계 수많은 수행자들이 무념무상(無念無想), 그리고 묵언(默言)을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복잡하고 어렵지 않습니까?
선도(仙道)는 의수단전(意守丹田)에 모든 것을 수렴하며 행주좌와(行住坐臥) 그것을 위해 애씁니다. 단전을 지켜보노라면 자동으로 무념무상이나 묵언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너무 쉽습니다.
선도 특히 의수단전에 관심 가져 보십시오. 그것이 얼마나 간결하고 효과적인 행법이라는 것이 이젠 이해가 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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