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神不死

흔들리지 않는 확신 본문

虛其心

흔들리지 않는 확신

thedaywemet 2020. 6. 25. 08:00

확신(確信)은 어디서 나오는가?
많이 듣고, 많이 읽은 것이 확신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더 망설여질 수도 있다.

큰 확신은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 소심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그 확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그 내면세계를 조금만 정확히 들여다보았다면 의심의 고삐를 늦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너무 쉽게 확신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이야기 몇 마디에 마음을 정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몇십 년의 각오와 반복되는 체험, 그리고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끝에 나온 확신이었다면 일단은 지지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깨달음보다 소주천(小周天)은 확신을 가지기가 오히려 어렵지 않다. 당사자는 여실한 기운의 움직임을 보고, 듣고, 느끼며, 그 에너지는 관념을 넘어선 물질적 차원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깨달음, 즉 '자기를 본다(見性)'는 것이 오히려 확신을 갖기에 더 어려움이 있다. 말을 타고 말을 찾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너무나 당연하여서 오히려 새삼스럽다.

혁혁한 선지식들도 깨우친 후 몇십 년을 스승 곁에 머무르며, 아라한이라 할지라도 죽을 때까지 숲을 지키는 이유가 그것이다.

확신은 축복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그것이야말로 일을 만드는 에너지이다. 털끝만큼의 의심도 사라져 버린 경계(境界),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것의 확보 없이 어찌 경거망동하겠는가?
그것이 없이 어찌 미래를 말하겠는가?
그것이 없이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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