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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진정 깨닫고 싶다면 심심함을 용납해야 한다. 모든 수행법이란 에고(ego)를 심심하게 만드는 작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심함을 견뎌내는 노력을 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한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마시고, 생각을 쉼 없이 과거와 미래로 옮기며 쓸데없는 근심, 걱정, 망상(妄想)에 빠지고... 술, 담배, 마약이나 섹스나 오락, 그도 아니면 일에 몰두하고... 자식이나 애완동물에 심하다 할 정도로 애착하고, 교회나 사찰 그리고 어디론가 분주히 쏘다니는 이유는 하나같이 모두 심심함 때문이다. 사실상 本來面目은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것은 늘거나 줄지 않으며,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見性한 사람이 그리도 드문 이유는 단조로움을 용납치..
생명이 시작되는 과정의 중심에는 '숨'이 있으며, 그것은 에너지(氣)의 전이이다. 그것은 심장(心臟)을 움직이는 원동이며, 의식과는 연기(緣起) 관계이다. 숨은 생명과 함께 시작(turn on)되는 의식 이전의 실제이다. 숨은 호흡과는 크게 다르며, 엄밀히 말해 태(胎)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올 때 호흡 속에 자리 잡아 호흡의 주체가 된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는 데 호흡의 공(功)이 가장 컸다는 것은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안정된 호흡은 의식의 깊은 차원, 즉 삼매(三昧; samadhi)를 불러오고, 그것은 깨달음의 실마리가 된다. 정혜쌍수(定慧雙修)가 언급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의식을 호흡에 몰입시킬 때 일상적이지 않은 의식이 확보되는데, 인도 수행자들은 그것을 사선정(四禪定; 네 단계 삼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