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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선가(仙家)에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됨됨이가 되지 못한 사람에겐 전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누가 정하는가? 그것은 타인(스승)이 정하는 것이 아니요, 배우는 자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스승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됨됨이가 된 사람이요, 조금 얻은 것으로 기고만장하여 스승 앞에 머리를 치켜드는 사람은 됨됨이가 덜된 사람이라 봐야 한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에게는 전하려 해도 전할 수 없다. 귀를 닫아 놓고 있기 때문에 몇 년을 스승 곁에 있어도 진전이 늦다. 그러므로 미리 판단하지 말고 쉽게 전해진다면 됨됨이가 된 사람이요, 애를 써봐도 전달하기 어려운 사람은 됨됨이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바른 제자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
과거엔 자식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좀 심하지만 "당장 집에서 나가라"거나, "호적에서 지운다"고 위협을 했다. 자식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었다. 근본이 없는 자식이 되어 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관직에 등용이 어려웠고, 사회로부터도 사람대접받기가 어려웠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일은 고금에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자식이 부모를 떠나버리는 일이 너무 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은 뒤집혔다. 이제는 재산을 미리 모두 자식에게 물려준 부모는 그들로부터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세상이다. 그뿐이 아니라, 혹시 쫒겨날까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사는 퇴직한 남편도 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일은 학교나 수행처에서도 일어난다. 이젠 스승이 제대로 제자를 훈육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물론 물려줄 밑천..
아이가 의젓하게 자기를 살려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아이의 어리광을 적절한 시기에 끊어줘야 한다. 계속 어리광을 받아주다 보면 Mamma's boy(또는 girl)가 될 터이니 말이다. 그 점에선 제자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을 미주알고주알 알리고 싶어 하는데, 관심을 자기에게 잡아두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야멸차지만 적절할 때 차단해 줘야 한다. 그래야 홀로 설 수 있는 불굴의 힘이 생긴다. 수행은 외로운 여정이다. 혼자 해결하고, 혼자 성장해야 한다. 오죽하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겠는가? 스승은 갈 길을 정해주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그래야 제자가 바르게 성장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실현하려면 제자를 온실 속에 가두지 말고 바람 부는 벌판으로 내몰아야 ..
좋은 환자가 명의(名醫)를 만들듯, 좋은 학생(學生)이 유능한 선생(先生)을 만든다. 좋은 환자란 면역력이 넉넉한 사람을 말하고, 선생 입장에서 좋은 학생이란 선생의 매너리즘을 일깨워 주는 사람이다. 모자라고 답답한 제자일수록 스승으로서는 은인이다. 그 제자로 인해 밤새워 공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문서답(東問西答)하는 제자, 틀린 답을 내놓고 옳다고 끝끝내 스승과 맞서려는 제자, 도저히 다른 선생에게 보낼 수밖에 없는 제자, 그런 사람은 제자라기보다는 스승이라 하는 게 옳다. 착하고 고분고분한 제자보다 그런 제자가 있어야 스승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 어찌 하늘이 내린 복(福)이라 아니 할 수 있단 말인가?
"슬픔은 나누면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다. 나누어 주면 줄수록 커지는 것이 기쁨 말고 또 있다. 그것은 밝음, 곧 깨달음이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창고 속에 숨겨놓으면 결국 썩고 만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밝아졌다면 그것을 나누어 주도록 노력하라. 그것을 아끼지 말라. 아끼다 보면 그것마저 반납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남에게 하나를 주면 당신에겐 두 개가 생긴다. 제자를 두고 난 후에 승급(昇級)하겠다는 회원이 있다. 너무나도 기특한 일이지만 혼자만의 생각이다. 일은 팀으로 이루어진다. 제자가 없는 승급은 승급이 아니다. 그것은 팀원이 없는 팀장과 같다. 깨어났다면 남들도 깨워야 한다. 아니면 결국 같이 잠들게 된다.
스승은 제자가 필요하고, 제자 역시 필요에 의해 스승을 만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스승에겐 제자가 필요하지만, 제자는 스승의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 스승이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어 얻을 것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해 나중엔 그에게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스승은 빨리 눈치를 채고 제자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으니 이제 내 곁을 떠나거라"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그 자리를 선선히 떠나줘야 한다. 그리되었을 때 스승과 제자의 좋은 관계는 영원히 지속된다. 하지만 그리되지 못하면 스승과 제자는 원수처럼 된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의 묘한 관계다. 하지만 스승도 공일만은 아니다. 스승은 언제나 제자의 몇 m 앞을 달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승이 물었다. 알고도 짓는 죄(罪)와 모르고 짓는 죄 중에 어는 죄가 더 크냐? 제자가 답했다. 알고도 짓는 죄입니다. 스승이 말했다. 아니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 여기 불에 벌겋게 달군 쇠가 있다. 그것을 알고 잡은 사람과 모르고 잡은 사람 중 누가 더 많이 다치겠느냐? 아는 것이 힘입니다. 우선 자기가 누군지부터 알아야 하고. 기운에 의해 산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50살 이상 살았다면 그동안 적어도 몇천 명의 사람은 만났을 것이다. 재밌게 놀아주던 동네 친구들, 초등, 중등, 대학의 친구들에서 시작해, 나를 좋아했던 사람, 내 가슴을 절절하게 했던 사람, 내가 필요해 만난 사람들, 나를 필요로 해서 만난 사람들, 사람들...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는가? 그 중엔 이 사람이라면 평생 친구로, 동료로, 동반자로 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폰 속에 전화번호라도 남아 있는가? 아마도 패티의 노래 속,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요"처럼 되었을 것이다. 여간한 로맨티스트가 아니라면 아직도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라고 읊조리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가 다해 사라진 사람들, 사소한 오해로 절교한 사람들, 사람들....
스승 밑에서 배우다가 그를 떠나게 되거나 파문(破門)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이 살다가도, 헤어질 인연이면 헤어지는 것이 인생사이니 떠나야 할 일이 생기면 떠나고, 보내야 하면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정(事情)으로 인해 헤어지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법은 지켜져야 한다. 배운 것 중에 허락 없이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다고 한 약속은 무엇보다 먼저 지켜야 한다. 스승에 따라서 가르침이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독선적일 때, 그리고 그 밑에서는 더 이상의 진보를 기약하기 어려울 때 조용히 스승을 떠날 수 있다. 그리고 제자가 사고(思考)가 반듯하지 못해 종지(宗旨)를 어기고, 공부 외에 잡사(雜事)를 쫓으며, 오만(傲慢)하여 문중(門中) 내에 분란을 일으..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다. 그러나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목이 마르지 않은 말은 물장난만 할 것이다. 스승은 밥상을 차려줄 뿐, 제자가 아직 어려 밥 먹는 것이 서툴어도 대신 먹어주진 않는다. 그리하면 평생 제자는 밥맛을 모르고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맛나게 먹으려면 우선 배가 고파야 한다. 배고프지 않으면 식당에 가지 말라.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면 머리는 쉬고, 눈과 코, 혀 그리고 배로 먹으라. 여기선 어떤 지식도 필요하지 않다. 식탁에 앉으면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라. 레시피가 무언지 이해하려 하지 말라. 그것은 나중에 당신이 요리를 할 때 필요한 것이다. 단순해져라. 짜면 짜다하고, 싱거우면 싱겁다 하라. 괜히 맛있는 척 할 필요는 없다. 입에 맞는 것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