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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理覺) (가고 가고 가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면 진리를 깨우친다) 오래전, 봉우(鳳羽) 선생님이 전해준 글이며, 언제부턴가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去란 "가다"는 뜻과 "버린다", "내려놓다"는 뜻이 있다. 버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行이란 말은 관찰(觀察)한다는 뜻이다. 쉼 없이 관찰을 이어갈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참으로 천복(天福)을 타고난 사람이다. 칠십 평생 역경(逆境)도 많았지만 하늘은 그것을 고생(苦生)으로 생각 않고 살 수 있는 힘을 주셨고, 결정적 순간마다 가르침을 내리셨다. 여러 스승들로부터 서도(西道), 선도(仙道), 불도(佛道)를 두루 섭렵케 해주셨고, 마침내 성명(性命)을 깨우쳐 이루는 은총(恩寵..
선도(仙道)는 성명쌍수를 표방하여 견성과 득명을 겸행(兼行)한다. 견성이란 본성을 깨우치는 것으로 심제좌망(心制坐忘)의 행법을 통한 환지본처이며, 불가의 본성을 깨우치는 방편과 대동소이하다. 중국 불도의 좌선 수행은 그 시작에 좌망(莊子의 坐忘)을 채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득명(得命)은 글자 그대로 생명(生命)을 얻는 수련이다. 통상 性은 개체성을 가지지 않는 전체성을 지니므로 생명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생명은 개체성, 즉 인간성을 지녀야 하는데, 이것에서 인도가 시원(始源)인 불가(佛家)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 선인(仙人)은 열반(涅槃)에 들지 않는 보살(菩薩)과 같다. 신(神)이 기(氣)를 놓치지 않고, 氣가 神을 놓지 않는 상태가 득명이다. 보살사상과 신선사상은 일맥상통한다. 보..
기(氣)를 받으려면 최소한 기본 통기(通氣) 정도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바싹 마른 땅에는 물을 부어봐야 겉돌기만 할 뿐 스며들지를 않고, 펌프로 물을 푸려고 해도 최소한 물 한 바가지는 부어줘야 한다. 거저 얻은 것은 거저 나간다는 말이 있다. 최소한 성의(誠意)는 표현할 줄 아는 사람에게 氣도 움직인다. 시험 삼아 氣를 받아서는 딱 그 정도만 氣를 받아 갈 수 있고, 氣를 모르고 불신하는 사람에게 氣는 배려하지 않는다. 氣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최소 기초가 되는 외단공(外丹功) 정도는 미리 익혀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에게만 은혜를 베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氣는 만물을 살리는 힘이다. 사람은 氣로 태어나서 氣로 살다가 氣가 다하면 죽는다. 氣를 갈무리 잘하는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사람은 참 이상도 하다. 같은 깨달음을 얻었어도 한쪽은 낙관적(樂觀的)으로 즐겁게 살고, 다른 한쪽은 비관적(悲觀的)으로 자기를 괴롭히며 산다. 한쪽은 인생의 밝은 면을 비추며 다소 괴로운 일이 있어도 무상(無常)의 이치에 따라 즐겁게 살고, 다른 한쪽은 인생은 '결국 고통뿐(一切皆苦)'이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괴로움을 낙(樂) 삼으며 살아간다. 한쪽은 무아(無我)를 모두가 하나(Oneness)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늘 감사하며 베풀어 가며 살지만, 다른 한쪽은 일체가 허망(虛妄)하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겨가며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 신앙(信仰)하며 산다. 한쪽은 살아있는 동안 험한 형편이나 다소 병약한 체질을 바꾸며 건강하게 살아가지만, 다른 한쪽은 삶에 대한 염세적(厭世的) 태도로 죽지 못해서 ..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면 먼저 내적(內的)인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것은 자기 믿음이며, 꼭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다. 태극결 보다 더 내적인 조건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만, 그 뒤에는 선배 신선(神仙)들의 후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리의 힘으로 에너지를 활성화시킨다. 하지만 수많은 수행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에너지를 일으키려면 외단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은 Energetic 해야 한다. 에너지가 없이는 어떤 일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필히 태극결과 외단공이 계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 점에서 효과적인 외단공을 전해준 선배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원력이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다면 항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일을 ..
단전(丹田)은 기운의 시작이며, 마지막입니다. 단전이 실(實)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으며, 언제나 이치를 따릅니다. 집착을 버리고, 늘 감사하며, 기뻐하면서 삽니다. 시간을 쪼개어 氣를 배(下丹田)에 모으십시오. 그것은 神仙이 되는 길입니다. 노자는 글로 말했습니다. 스스로 자존심을 세우지 않으면 다툴 일이 없고, 재물을 초개(草芥)처럼 여기면 헛마음이 사라지고, 세상의 영화를 포기하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그러므로 깨우친 자는 마음을 비워 氣를 배에 모으고, 집착을 버리고 내면을 튼튼하게 하며, 언제나 텅 빈 지식과 헛된 욕망을 없이 하므로, 그런 사람(이치를 아는 사람)에겐 이른바 시비 분별이 감히 나서지 못한다. 이렇게 하는 바 없이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不..
'깨달음'이 세수하다 코만지기보다 쉽다는 말이 있듯, 단전(丹田) 호흡도 마찬가지입니다. 번뇌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면 백날을 다리 꼬고 앉아있다 할지라도 깨달음의 갈피조차 잡지 못하듯이, 丹田 활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돈과 권력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을 단번에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듯이 단전 살려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중 얼마나 깨달음에 마음 쓰고 사는지, 얼마나 의수단전(意守丹田)에 성(誠)을 다하는지 스스로 살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미래입니다. 아무도 대신 신경 써줄 수 없으며, 아무도 대신 공부해줄 수 없습니다. 선도(仙道)는 이론이 필요 없습니다. 먼저 丹田부터 열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불문(佛門)..
불가(佛家)의 공부가 사념처(四念處)라면 선가(仙家)의 공부는 의수단전(意守丹田) 하나로 집약된다. 丹田 意守는 자연스런 사념처(身受心法) 공부이기 때문이다. 깨달음 공부의 어려움이 일념(一念)이듯이 선도(仙道) 공부는 丹田이 Open되어야 한다. 一念이 견지(堅持)되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듯이 단전(丹田)이 활성화 되는 순간 仙道공부는 순풍(順風)을 얻게 된다. 불도(佛道) 공부와 仙道 공부는 낙처(落處)가 다르다. 불도는 윤회(輪迴)도 끊긴 완벽한 소멸(涅槃)이 목표지만, 선도는 생사(生死)를 초월한 신선(神仙)이 되어 만락(萬樂)을 누리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말할 수 없다. 단지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