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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마음이 우러나지 않고 되는 일은 없습니다."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가 있듯이,그 좋은 사랑도 아무나는 못 합니다.누구나 청운(靑雲)의 꿈을 꾸지만, 뜻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단전호흡을 한다는 사람은 많아도, 단전(丹田)으로 호흡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군인이 수없이 많아도, 별을 다는 사람은 정해져 있듯이 말입니다.공부하겠다는 아이를 막을 길은 없지만, 공부 못할 이유를 찾는 사람을 공부시킬 도리는 없습니다.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스승의 도움 없이 연정화기(鍊精化氣)조차 어렵습니다.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살아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골반이나 무릎이 0.1도만 비틀려 있어도 틀린 길만 가기 때문이랍니다.자기를 세우지 마세요.자기를 죽이라는 말은 스승 앞에서 적용되는 말입니다.자기를 속이지 마십시..

수행이란 자기를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만을 세우지 않고, 내려놓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행은 믿음이 아니므로 "나는 없다(無我)"는 말로 자기를 세뇌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없다면, 세상도, 하느님도, 부처도 없으며, 수행조차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수행이란 자기를 알아가는 여정(旅程)이다. 한 꺼풀, 한 꺼풀씩 자기를 벗겨, 본래면목(本來面目)으로 다가간다. 그것을 불가(佛家)에선 "원래 부처가 부처임을 확인한다"고 하고, 선가(仙家)에선 "신선(神仙) 자리를 회복한다(回仙)"고 한다.

수행이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수행은 자기를 아는 것이며, 스스로의 권리를 챙기는 것이다. 수행자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패턴을 갖는다. 수행자는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돈과 권력을 첫 번째 관심사로 두지 않는다. 그들은 조작된 교리나 사상에 휩쓸리지 않아 혹세무민에 휘둘리지 않는다. 최고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므로 자기 정체성과 함께 불로장수가 주관심사이다. 장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인간이 가진 특권이다. 에너지 활용이 꼭 필요함을 숙지하고 있으며, 깨어있음과 건강 지킴에 시간 쓰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도(道)와 마(魔)는 한통속 고르지 못한 날씨로 모종을 재구매하는 농가가 많습니다. 심은 오이, 호박, 고추, 강낭콩, 도마토 등등이 축 늘어졌습니다. 곡우(穀雨)를 지났지만, 갑자기 닥친 영하 가까운 기온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파(直播)한 작물들은 거의 피해가 없습니다. 식물들이 눈치껏 알아서 싹을 틔우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수행하기 적합지 않다는 티베트 승려의 글을 읽었습니다만,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한국보다 수행하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늘 생각합니다. 저절로 수행이 무르익지는 않습니다. 수행(修行) 역시 배고픔, 추위를 견디며 잡초처럼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단체에 적을 둔 수행자들은 예외입니다. 그들에겐 집 걱정, 먹을 걱정이 없습니다. 스님(?) 소리 들어가..

인공지능은 Data가 없으면 상황종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공지능만큼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데이터 취합능력도, 응용능력도, 출력능력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일부 특수한 분야의 인공지능(ChatGPT)이 Data가 부족해 당분간은 버벅댈 것임이 틀림없지만, 상상을 초월할 투자에,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 들러붙었으니 조만간 승부는 인공지능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이터를 넘어선 인간의 영적(靈的) 능력이라든지 생체에너지(氣)를 교류하는 영역에서만은 인간에게 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과 경쟁해서는 안 되며, 경쟁할 수도 없다. 그것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우리는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만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기계를 상전으로 모시고 그것..

성찰(省察)이란, 자기를 살피는 것이다.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성찰을 위한 자기만의 노하우(Knowhow)를 가지고 있다. 일기 쓰듯 매일 글(메모)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자기 성찰법은 없다.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는 것, 그리고 그것에 느낀 바를 쓰는 것, 그것을 통해 우리는 자기의 수준을 알아갈 수가 있다. 찌질해 보여 개선(改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성공자의 대열에 서게 되는 것이다. 수행의 으뜸 역시 자기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자기를 성찰(省察)할 수 있어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자기 성찰이다. 소주천(小周天)도 마찬가지다. 자기 에너지(氣)를 관조(觀照)할 수 있어야 소주천도 가능하다. 매일 글을 쓰라. 그리고 남들과 공유할 만한 글이 생기면 화도(華道; c..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은 없다. 심각한 건강 문제나 실연(失戀), 불합격, 사업의 실패 등,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때가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그때 자기에게, "지금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해 보라. 그 괴로움을 묵묵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면, 견성(見性)에 벌써 다가선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나와 괴로움 당하는 그것이 별개라고 느껴진다면, 한 발 더 가까이 간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단지 흘러 지나가는 바람이라 느껴진다면 공부는 마무리 단계다. 오직 "깨어있음"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수행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자기 정체성 확인하기, 다른 하나는 에너지(氣) 활성화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간이 나면 즐기는 취미가 아니며, 거의 의무에 가깝다. 인간이 자기본성(自性)을 모른다면, 아무리 많은 재물과 권세를 누린다 해도 짐승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에너지 수련 역시 특별하지는 않다. 그것은 자기 밥을 자기가 찾아 먹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닦는다는 것은 씻어낸다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드러난다. 1. 일단 마음을 고요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2. 자기에게 초점을 맞춰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알아채야 하고, 3.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관찰해야 하고, 4. 마지막으로 다시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된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데는 단전(丹田)에 마음을 두는 것 즉 의수단전(意守丹田)이 으뜸이다. 丹田이 아직 열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복식호흡과 함께 하복부 중앙에 마음을 두면 된다. 연습이 반복될수록 단전으로부터 에너지가 들고 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전은 생명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선도(仙道)는 단전으로 시작해, 단전으로 끝난다.

수행(修行)은 밥 먹는 것처럼 매일 거르지 말고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적일 때 공(功)이 쌓인다. 규칙적으로 식사(小食)를 하듯이 말이다. 기분 날 때 배불리 먹었다고 며칠을 굶어서는 위장병 걸리기 딱 맞다. 修行은 마치 곰국 끓이듯 해야 한다. 불을 넣었다 뺐다 해서는 안 된다. 丹田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으론 살려내지 못한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체화(體化)하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하다 안 하다, 들쭉날쭉 공부하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느니, 토끼 뿔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만 보아도, 선생은 현재 당신 상태를 알아차린다. 태극결(太極訣) 수련은 스승과 사이클을 맞추는 수련이다. 시작을 했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때까지 매일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