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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내가 없으면,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없으면, 알아챌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나는 실재(實在)하지만, 고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합니다. 고정되지 못한다고 하여, 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알아채야 합니다. 나를 알아챈 것을 가리켜 깨달았다 합니다. 몸과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하지만 몸의 변화를 알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는 '그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자아(自我)입니다.

수행이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수행은 자기를 아는 것이며, 스스로의 권리를 챙기는 것이다. 수행자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패턴을 갖는다. 수행자는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돈과 권력을 첫 번째 관심사로 두지 않는다. 그들은 조작된 교리나 사상에 휩쓸리지 않아 혹세무민에 휘둘리지 않는다. 최고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므로 자기 정체성과 함께 불로장수가 주관심사이다. 장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인간이 가진 특권이다. 에너지 활용이 꼭 필요함을 숙지하고 있으며, 깨어있음과 건강 지킴에 시간 쓰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사랑할 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알아챌 수도, 깨달을 수도 없으며, 내가 없다면 무아(無我)를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실재(實在)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합니다. 나를 알아챈 것을 가리켜 '깨달았다' 합니다. 몸과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몸의 변화를 알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는 그것, 그것이 바로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다.

깨달음이 무엇보다 먼저입니다. 자기를 알고 나면 명상이나 최면 등 마음 조절할 일들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깨달으세요.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 어찌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사유(正思)를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바른 말(正語)과 바른 행동(正業)을 할 수 있겠습니까? 깨달음이 없으면 세간(世間)의 양심(良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고, 성직자라도 감투싸움 할 수밖에 없으며, 형제라도 사상이 다르면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삼법인(三法印)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사성제(四聖諦) 역시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깨달음이 있으면 무상(無常)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아(無我)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이치도 저절로 풀리니 말입니다.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보다 쉬운 견성(..

길을 가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는 '주체'는 변함이 없다. 수행을 하다보면 별의별 풍경(風景)을 다 만난다. 하지만 풍경은 풍경일 뿐이다. Samadhi에 들다 보면 시원해지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하고, 환희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눈앞에 빛이 나타나기도 하고, 신비한 소리도 들리는 듯, 온갖 것들이 난무한다. 요즘 남방불교의 스승을 자처하는 사람이 '니미따(Nimitta)'를 말하며,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선정(禪定)의 전조(前兆)라고 주장한단다. 그리 믿고 싶으면 그리 믿어도 좋다. 하지만... 견문각지(見聞覺知) 하나하나 중에 수행의 진전(進展)을 알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담박 깨어나라!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그리고 감각되..

깨달음이란, 꿈을 깨고나니 꿈속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이 헛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입니다. 살아보니 7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꿈속처럼 도무지 가늠이 안 됩니다. 놓치고 싶지 않아도, 우리의 알음알이나 소유물들은 오래되지 않아 나를 버리고 떠납니다. 하지만 온 적도 없고, 가지도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을 깨우친 것을 가리켜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집중력을 기르는데 단전호흡(丹田呼吸)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 내 몸과 마음에 에너지장(Energy field)을 만들어 좋은 컨티션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수행자에게 건강은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합니다. 건강이 허물어지면 고차원적 수행을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초보자는 숨 쉬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나머지 것들은 거의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식호흡이 무르익어 단전(丹田)이 깨어나고, 마침내 단전으로 숨을 쉬게 되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몸과 마음의 새로운 기능들을 알아채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주인이며 세상 모두가 그것에 속한 한통속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판타지(fantasy) 같은 예술입니다. 단전호흡은 집중력과 건강에 이어 마지막엔 우리를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

Q: 왜 그들은 술 마시는 것을 죄(罪)라고 하나요? A: 술을 마시면 신선(神仙)이 되어 저쪽 세상을 엿볼 수 있게 되고, 그리되면 그들 맘대로 다루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Q: 왜 사람들은 비싼 술값을 치르면서도 술을 마시는 걸까? A: 술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를 일시적이라도 "그 자리" 본래면목(本來面目)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Q: 술이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마셔 보도록 해봐라. 하지만 좌절하지는 말라. 찾아보면 술 말고도 깨달을 수 있는 길은 아주 많이 있으니까... Q: 그렇다면 왜 술을 마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가? A: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과 명상하는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배는 강을 건너는 수단이다. 배가 강기슭에 ..

눈은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합니다. 신경(神經)도 보고 듣지 못하고, 뇌(腦) 역시 듣고 보지 못합니다. 듣고 보게 하는 놈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눈과 신경 뇌를 연결하여, 보고 듣게 만드는 작용(作用)이란 놈입니다. 그것이 느끼게 하고, 생각과 감정도 일으키고, 마음도 이리저리 운영합니다. 그것을 이름하여 진여(眞如),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하고 그것을 여실(如實)히 깨우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깨달은 사람이나 무지(無知)한 사람이나 삶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이는 그것을 알므로 주인으로 살고, 깨닫지 못한 이는 그것을 모르기에 노예처럼 삽니다. 깨달은 이는 가진 것이 적고 지위(地位)가 낮아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지만, 무지한 사람은 많은 재산(財産)에 지위가 높아도 ..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 4:17) ● 悔改란 무엇입니까? ○ 뉘우쳐(悔) 고치(改)는 것을 가르킵니다. ● 뉘우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잘못을 깨우침을 말합니다. ●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 無知가 가장 큰 잘못입니다. ● 무엇에 대한 무지입니까? ○ 善惡을 아는 것이 곧 무지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몰라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 무법천지를 말하는겁니까? ○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그럼 선악을 모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 선악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 眞理와 함께 살으라는 뜻입니다. ● 진리는 무엇입니까? ○ 時間, 空間과 관계없이 어디서나 통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진리와 함께 살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