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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神不死
마음이 흐린 사람의 눈에는 맑은 하늘도 회색빛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은 밝은 미래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일별(一瞥)을 했다손 치더라도,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다시 어두워진다. 목욕 한번 했다고 영원히 개운할 수 없듯이 말이다. 공부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한 줌 안 것을 가지고, 전체를 안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 공부 길에 먼저 나서고, 조금 늦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꾸준히 걷고 걷는 거북이가 뛰는 토끼를 이긴다. 세상과 스승 앞에선 늘 겸손해야 한다.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가? 함께 공부하는 도반(道伴)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서로의 공부에 힘을 주니 말이다. 늘 맑은 마음 갖기를 애써야 한다. 구름 뒤에 밝은 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
이루어도 이루어도, 가져도 또 가져도, 늘 허전함이 남는 사람, 늘 "이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사람, 노령(老齡)이나 지병(持病)으로 여생(餘生)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자각(自覺)이 진정으로 절실한 사람... 그런 사람이 道에 입문하면 어렵지 않게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무엇보다 깨우치는 공부에 심혈을 기울일 테니 말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더 얻을 것이 있고 지킬 것이 많은 사람, 배운 것이 많아 말과 글에 의미를 두는 사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이라 믿는 사람, 지금 이렇게 사는 것 외에 별다른 것이 있나? 하는 사람에겐 견성(見性)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깨달음이란 일 없는 사람들의 놀이처럼 보일 겁니다. 마치 구름 잡는 일처럼 실익(實益)이..
내가 누군지 몰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사람에게 도(道)를 전하지 말라.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그런 데 쓰는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그에게 공부 방해만 줄 수 있다. 그래서 현자(賢者)들은 "청하지 않으면 주지 말라" 한 것이다. 진실하게 자기가 누군지 궁금하다고 목마른 사람에게만 道를 알려줘라. 그것도 단번에 주지 말고, 뜸 들여가며 단계적으로 알려줘라. 그것이 바로 자비요, 사랑이다. 단번에 시원히 알려주면 오해의 소지가 될뿐더러, 道를 경시하게 되어 원래의 무지(無知) 상태로 다시 돌아가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마음의 바닥에 깨달음(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술을 마시고, 여인과 함께 있어도 그는 선인(仙人)이고, 마음의 바닥에 색욕(물질 우선 주의)만이 자리잡아 있으면 명상, 참선(參禪)을 일 삼고 산다 할지라도 그는 속인(俗人)이다. “아차, 또 속았네” 하면서 즉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으면 그는 도인(道人)이고, 말로만 ‘내가 부처’라고 자만(自慢)한다면 그는 무도인(無道人)이다. 도(道)말고 과연 이 세상에 다른 얻을 것이 있는지 살피고 또 살피라. 남들도 그리 사니 나도 그리 살겠다 하지 말라. 그들이 좋다고 불구덩이로 들어간다고 따라 들어갈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