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노자 (6)
谷神不死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에게 왜 불교를 신앙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부처님이 현세의 고통과 사후의 문제를 해결해주신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선도(仙道)를 하는 사람에게 왜 선도를 닦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신선(神仙)이 되려고 한다고 했다. 무엇을 신선이라 하느냐 물으니 '자유인'이라 했다 佛道와 仙道는 말만 다를 뿐,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불합종(仙佛合宗)이란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인선(人仙)은 현세를 걸림없이 사는 사람이요, 지선(地仙)은 生死를 해결한 신선이요, 천선은 무여해탈(無餘解脫)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도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본다. 몸을 닦으면서 마음을 닦는다. 물론 에너지(氣) 공부를 중심으로 하지만 말이다. 선도는 점법(漸法)이고, 단계적으로..
숭산(崇山)은 늘 "오직 모를 뿐"이라 했고, 공자(孔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라 하였다 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모른다는 이야기인가? 아는 척하지 말란 이야기인가? 노자(老子)는 간결하게 말한다. "모른다는 것을 알면 上의 사람이요,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은 병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를 세계 성인(聖人)이 되게 한 말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였다. 핵심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데 있다.
노자(老子)는 일견 냉정해 보입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핵심만 간단히 이야기합니다. 그는 "마음은 허(虛)하게, 배는 실(實)하게(虛其心實其腹)"로 성명쌍수(性命雙修)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선도(仙道)만의 깨우침과 동시에 장생불사를 동시에 얻는 묘책(妙策)입니다. 仙道에는 마음을 비우는(虛) 별도의 복잡한 행법(行法)이 없습니다. 단지 배를 實하게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비워지도록 합니다. 단전을 지키는 것(意守丹田)이 그것입니다. 처음엔 정확한 단전(丹田) 자리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굳이 애를 써 숨을 조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랫배(下腹)의 중앙에 마음을 두고 천천히 숨을 지키노라면 얼마 안 가서 자연스럽게 丹田이 드러납니다. 그 자리가 에너지의 중심 센터입니다. 태식(胎息..
上善若水! 여기서 주어는 '물'이 아니고 '상선'입니다. 이 老子의 글은 上善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물은 상선의 서술어입니다. 善은 善일 뿐 上下가 없습니다. 상선은 善과 惡을 넘어선 본래의 자리(道)를 가리킵니다. 사람이 에덴동산에 있었을 때, 선과 악을 몰랐습니다. 神과 같은 시각으로 고통과 죽음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홀연히 하느님과 같이 되고 싶은 貪心과 어리석음(癡心)이 생겨났습니다. 본래 하느님과 같았는데 말입니다(?). 성경은 뱀을 등장 시켜 原罪를 설명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느님과 같이 된다(창세기 3:5)'고 인간을 유혹합니다. 뱀 같은 미물이 어찌 사람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뱀은 단지 뱀일 뿐입니다. 원흉을 뱀으로 만들었지만, ..
노자는 진화론과 창조론 대신 '도(道)'를 이야기 했다. 물론 '도'는 생명체의 탄생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노자의 입장이 하나의 이론으로 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설명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응용을 불러온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익창출과 직결되므로 인간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꽤나 흥분되는 것은, 머지 않아 모든 발달된 학문은 '미스터리를 설명해 주지 않는 노자의 불친절한 이론'이 옳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밖에는 없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현대의 학문은 응용의 방향으로는 무한 발산하지만, 그 근본 원리를 알아내는 쪽으로는 오직 수렴할 뿐, 그 원리 자체에는 도달할 방도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서로 양립할..
세상엔 老子를 읽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구름잡는 이야기나 늘어놓고 있는 중국 노인이라 하여 대강 읽고 덮어버린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그 내용에 심취해 있기는 하나 스스로의구체적인 체험이 부족하여 단순히 그 글과 이론에만 매여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극소수의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은 노자는 道에 대한 관념적 풀이, 자연 속의 한가로운 삶,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자세, 세상을 편하게 사는 처세의 글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老子를 올바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老子는 인생을 바로 보게 해주는 깨달음의 글이다. 단순히 깨달음의 경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道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어떻게 깨달음에 이를 것인가의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확..